경북 구미시 한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된 만 2세 여아 보람이의 친모(親母)로 나타난 석모(48)씨에 대해 법원이 1심에서 징역형을 선고했다. 석씨는 자신의 딸 김모(22)씨가 낳은 아이와 자기가 낳은 보람이를 바꿔치기하고, 이후 사망한 보람이 시신을 유기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석씨는 아이 바꿔치기는 물론 출산 사실까지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인정하지 않았다. 17일 대구지법 김천지원 형사2단독 서청운 판사는 미성년자 약취 및 사체은닉 미수 혐의로 기소된 석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은 지난 2월 구미의 한 빌라 3층에서 보람이가 미라화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알려졌다. 석씨의 딸 김씨는 보람이를 친딸로 알고, 2018년부터 약 2년 5개월간 키웠다. 하지만 이혼 후 현 남편과 사이에서 얻은 자녀의 출산이 임박하자, 지난해 8월 보람이를 빌라에 홀로 방치해 사망하게 했다. 보람이 시신이 발견된 직후 석씨는 경찰에 자신이 외할머니라고 했지만, DNA 검사 결과 보람이 친모라는 결과가 나왔다.
석씨는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사체은닉 미수 혐의는 인정하지만, (보람이를) 낳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대검찰청 등에서 수차례 실시한 DNA 검사에서 ‘석씨와 보람이는 모녀 관계’라는 결과가 나왔는데도 이를 부정했다. 지난달 13일 열린 공판에서는 “송곳 같은 진실을 밝혀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재판부는 “석씨가 피해 여아(보람이) 친모라고 넉넉히 인정된다”고 했다. 재판부가 석씨가 유죄라고 판단한 쟁점은 총 3가지였다. 석씨와 보람이의 친자 관계에 대해 재판부는 DNA 검사 결과로 볼 때 “석씨가 보람이 친모가 아닐 확률이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보람이 혈액형(AO 유전형)은 석씨(BO)에게서 나올 수 있지만, 석씨의 딸 김씨(BB)와 김씨 전 남편(AB) 사이에선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오류 가능성이 극히 적을 경우, 과학적 증거 방법으로 증명된 사실을 쉽사리 뒤집어서는 안 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석씨가 임신 추정 기간에 퇴사한 사실을 숨기려 거짓 진술을 했고, 온라인 쇼핑을 통해 몸매 보정 속옷을 구입하고, 생리대 구매 내역이 없으며 출산 관련 앱을 설치한 점 등을 출산 입증 증거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석씨가 출산 사실을 숨긴 이유에 대해 “임신으로 불륜 사실이 드러나는 것이 두렵고, 정상 양육이 어려운 점을 염려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보람이는 석씨가 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기 바꿔치기’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산부인과 구조상 외부인이 드나들기 쉬웠고, 아기 발목에 있던 인식표(구별 띠)가 훼손됐고, 아기 몸무게가 급격히 변한 것을 증거로 인정했다. 딸 김씨가 산부인과에서 퇴원할 때 집으로 데리고 간 아기의 배꼽 탯줄에서 보람이와 동일한 유전자가 확인된 점도 증거로 채택됐다. 재판부는 “퇴원 전 바꿔치기가 이뤄졌다”며 “제삼자가 석씨와 김씨 등 두 산모의 아기를 바꿔치기했다는 것은 상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친딸의 딸과 자기 딸을 바꿔치기하는 전대미문 범행을 저질렀고, 외손녀는 현재 생사를 알 수도 없는 상황인 만큼 준엄한 법의 심판이 필요하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석씨는 재판부가 유죄를 인정하자 잠시 실신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석씨 남편은 “사람 잡겠다”고 방청석에서 소란을 피우다 강제로 퇴정됐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석씨가 혐의를 부인해 정확한 범행 동기를 밝히지 못했다. 또 석씨가 바꿔치기한 김씨 딸의 행방도 확인되지 않았다. 구미경찰서 관계자는 “추가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수사 중”이라고 했다. 앞서 지난 6월 살인 등 혐의로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석씨 딸 김씨는 항소해 오는 19일 재판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