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전 대통령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23일 광주광역시 시민들과 5월 단체 등은 “죽기 전에 5·18과 관련해 사죄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다”며 “끝까지 진실을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세우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5·18기념재단과 5월 3단체(유족회·부상자회·구속부상자회)는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전씨가 죽더라도 5·18의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가 전복과 5·18 학살의 주범 전씨는 반성과 사죄는 커녕 회고록으로 5·18 영령들을 모독하고 폄훼했으며, 지연된 재판으로 결국 생전에 역사적 심판을 받지 못하고 죄인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5월 학살 주범들에게 반드시 책임을 묻고, 전씨의 범죄 행위를 명명백백히 밝혀 역사 정의를 바로 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훈 5·18유공자유족회장은 “고인의 죽음은 안타깝지만,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사죄나 고백 없이 사망한 데 대해 안타까움이 크다”고 말했다. 또 전 전 대통령이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던 중 별세한 것에 대해서도 “전씨가 재판을 통해 응분의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사망해 아쉬움이 크다”고 했다.
소송 피해자 측 법률 대리인 김정호 변호사는 “전씨가 역사와 국민, 광주시민들에게 끝내 반성과 사죄 없이 사망한 것은 무책임한 모습이며, 역사적으로도 오점”이라고 말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반성과 사과 없는 죽음에 광주시민은 울분과 분노가 앞선다”며 “40여 년을 피 맺힌 한으로 살아온 오월 가족들, 진정한 사죄와 진상규명을 통해 오월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외쳤던 민주시민들을 외면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고인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이 시장은 “죽음이 결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며 “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국가와 국민에 반역한 전두환에게는 어떠한 애도도 적절치 않다”며 “150만 광주시민은 전두환의 국가장 등 어떠한 국가적 예우도 반대 입장임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이 시장은 이어 “5‧18진상규명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명령”이라며 “살아있는 5‧18책임자들은 그의 죽음을 교훈으로 받아들여 이제라도 5‧18진실규명에 앞장서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김정희 민변광주전남지부장은 “한 사람의 죽음은 애도할 일이지만, 결국 한마디 사죄도 없이 법정 공방까지 벌이다 죽음을 맞은 데 대해 씁쓸한 마음과 역사적 아픔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들도 “왜 사과 없이 떠났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초등학교 교사 박모(48) 씨는 “올해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군부 독재의 거두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며 “40여 년이 흘러도 5·18의 생채기가 여전히 아물지 않은 광주 시민들에게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던 점은 두고두고 비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신교 목사 양모(50)씨는 “법과 역사의 심판을 목전에 두고 유명을 달리해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국장’ 거부 여론도 비등했다. 앞서 광주·전남에서는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는 것과 관련해 논란이 일었다. 직장인 이모(56) 씨는 “전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르고,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일이 생기면 광주 시민들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전 전 대통령은 지난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당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 지난 2018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었다. 전 전 대통령은 항소심 재판부 허가를 받아 불출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오는 29일 결심 공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전 전 대통령의 별세로 이 재판은 공소기각 결정으로 종결될 전망이다. 형사소송범 제328조는 형사재판을 받던 피고인이 사망하면 재판부는 공소를 기각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형사재판과 별도로, 5·18 관련 4개 단체와 고 조비오 신부의 유족이 전 전 대통령과 아들 전재국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 1심에서 일부 승소한 뒤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재판은 소송 수계 절차에 따라 계속될 수 있으나, 상속인들의 상속 포기 여부에 따라 재판 지속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