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논란이 제기된 올해 울산미술대전의 일부 수상작에 대해 지역 예술단체와 전문가들은 “표절이므로 수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반면 주최측인 울산미술협회는 “수상을 취소할 정도의 명백한 표절로 보긴 힘들다”는 상반된 입장을 밝혀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울산민족예술인총연합(울산민예총)과 울산민족미술인협회는 지난 23일 입장문을 내고 “문제가 된 일부 수상작은 명백한 표절”이라며 “수상 작가들이 활용한 이미지는 분명 어느 사이트에 있다. 그것을 패러디하거나 재창조한 게 아니라 거의 그대로 그렸으니 누가 봐도 베끼기”라고 밝혔다.
울산미술협회가 주최하고 울산시, 한국미술협회가 후원한 올해 울산미술대전 공모에는 총 693점이 출품됐고, 이중 최우수작인 곽모 작가의 ‘비 온 뒤’와 입선작인 박모 작가의 ‘무고춤’, 손모 작가의 ‘TeapotⅡ’이 웹사이트인 핀터레스트의 이미지와 흡사해 표절 의혹이 일었다.
이들 단체는 “그림을 베껴 그리는 것은 창작을 위한 연습용이지, 자신의 창작물이라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대미술이 다양하게 변화하고, 인공지능(AI)이 도래했지만 표절 행위는 잘못된 창작형태”라며 “사태의 원인은 주최측의 부주의라기보단 창작자의 잘못된 창작 행태다. 잘못된 관행이 되지 않게 울산미술협회가 제대로 결론을 내리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임영재 울산대 미대 교수도 본지에 “표절이 안 되려면 형식, 내용면에서 원작과 달라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거의 없어 표절로 보인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요즘 젊은 작가나 학생들이 핀터레스트 등의 인터넷 이미지를 많이 참고한다. 거기서 힌트를 얻을 순 있지만, 공모전에 내서 상을 받는 건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심사 과정에서 많은 이미지를 물리적으로 찾아내 거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문제는 심사 후 이런 문제가 드러났는데 수상 취소 등 수습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반이정 미술평론가도 “논란이 된 작품들은 전체적인 구성이나 오브제, 배경 색채 등이 거의 같아 표절로 보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원본이 된 사진이나 회화 작품을 아주 약간만 변형하고, 거의 옮기다시피 그려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 소지가 많다”고 밝혔다.
반 평론가는 “최근 작가들의 창작 환경이 과거와 달라지면서 표절이냐 아니냐에 대한 기준이 선명했던 과거와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다”며 “인터넷 이미지를 가져다 쓰는 것에 대해 특별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출처가 없는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와 작품을 만들다보면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다. 실제 인터넷상 이미지를 썼다가 문제가 된 작가들도 있어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울산미술협회는 “수상을 취소할 정도의 명확한 표절로 보기 힘들다”는 입장을 내놨다.
울산미술협회는 이날 협회 홈페이지에 올린 ‘제28회울산미술대전 운영위원회의 결과’와 ‘미술대전 심사위원회의”란 글에서 “문제가 된 수상작들을 두 차례 재심사하고, 운영위원회 토론도 거쳤으나 수상을 취소할 정도로 표절이라는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 글에서 심사위원들은 “그림의 조형과 구도는 같아 보이고, 전체 느낌으로 보기에 유사 부분이 많이 보인다”면서도 “세부적인 묘사에서 수상작들은 면을 잘라 색을 재해석하거나 부분적으로 조직을 해석하는 부분에서 개인의 창의성이 보이는 등 재현적 미술의 관점에서 창작이 들어가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또 “일부 작품의 경우 원래 사진의 형태를 가늠할 수 없어 표절로 보기에 애매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수상 취소 여부에 대해서도 “순수 창작미술의 표절, 모방 등에 대해선 법적 근거가 없어 수상 취소의 논거가 부족하다”며 “단정적인 결론으로 수상을 취소하면 울산미술협회가 법적 책임을 질 수 있고 피해자도 생겨날 수 있어 상을 취소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김봉석 울산미술협회장은 “심사위원들이나 운영위원들이 표절 논란이 제기된 데는 충분히 공감을 했다”며 “하지만 이들이 참고한 핀터레스트 이미지들의 경우 전세계에 수억 장의 이미지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저희 직원들이 며칠 동안 문제가 제기된 작품들의 원래 이미지를 이 사이트에서 찾아봤으나 원작자의 저작권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다”며 “이에 명백하게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라 보기 힘든 부분이 있고 급변하는 현대미술의 특성상 표절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아 수상 취소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또 “향후 비슷한 일이 생겼을 때 표절이나 저작권 침해가 될 수 있는 작품을 심사에서 거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