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충북 단양군 단양중학교 학생들이 50년전 시루섬의 기적을 재연하고 있다./단양군

충북 단양군 남한강에는 황무지 섬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이 무인도는 ‘시루섬’이다. 떡이나 쌀을 찔 때 쓰는 둥근 질그릇인 ‘시루’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충북 단양군 시루섬/단양군

이곳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시루섬에는 한때 44가구 250여명이 살며 서울로 오가던 소금 뱃길로 번성했던 곳이라고 한다. 1972년 8월19일 태풍 ‘베티’가 한반도를 덮쳤는데, 하루 최대 강수량이 407.5㎜를 기록할 만큼 위력이 거셌다. 이 마을도 베티를 피할 수 없었다. 당시 이 지역에 내린 집중호우로 남한강이 범람했고, 마을도 고립됐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주민들이 몸을 피할 곳이라고는 마을의 물탱크뿐이었다고 한다.

197명이 생존한 시루섬 물탱크 당시 모습/연합뉴스

마을 주민들은 높이 6m, 지름 5m 물탱크 위로 올라서기 시작했고, 그렇게 올라선 주민은 모두 198명에 달했다. 이들은 서로 떨어지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부둥켜안고 꼬박 밤을 지새웠다. 이 과정에서 생후 백일된 아기 1명이 압사했다. 하지만 아이의 어머니는 주민들이 동요할까봐 슬픔을 묻어두었고, 14시간의 사투 끝에 구조된 주민들은 그제야 아이의 죽음을 알게 됐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일을 ‘시루섬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시루섬은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섬 일부분이 수몰되면서 사람들이 떠났고, 지금은 무인도로 변했다.

시루섬이 바라보이는 충북 단양군 적성면 남한강 수변공원에는 50년전 '시루섬의 기적' 당시 아이를 잃은 어머니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단양군

50년 전 주민들의 일치단결로 극적으로 생존한 ‘시루섬의 기적’이 재현됐다.

단양군은 21일 단양읍 문화체육센터에서 김문근 군수, 조성룡 군의회 의장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루섬 모형 물탱크 생존 실험을 진행했다.

이날 실험에는 단양중 1·3학년 200명이 참여했다. 학생들은 지름 5m, 높이 30cm 크기의 모형 물탱크에 차례로 올라섰다. 50년 전 시루섬에서 물탱크에 올라 생존했던 인원인 197번째 학생이 모형 물탱크 위에 올라서자 문화체육센터에서는 탄성이 이어졌다. 학생들은 팔짱을 끼는 등 최대한 밀착해 목표했던 3분을 물탱크 위에서 버텼다.

지름 5m 크기 물탱크가 197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피난처가 됐을지 일각에서 의구심이 일었으나 이번 실험을 통해 시루섬의 기적이 사실임이 입증됐다.

실험 장면을 지켜본 시루섬 생존자 김은자(66) 씨는 “물탱크를 내려오니 전혀 다른 세상이 되어 있었다”며 “시커먼 물바다 속에서 어떻게 살았을까 눈물이 난다”라고 회상했다.

단양군은 다음 달 19일 단양역 광장에서 당시 생존 주민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972. 8. 19. 시루섬 영웅들의 이야기’라는 이름으로 시루섬의 기적 50주년 기념행사를 연다. 시루섬 사진전, 시화전, 다큐 공연, 설치미술, 백일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김문근 단양군수는 “시루섬 주민들이 보여준 단결과 희생정신을 단양의 정신으로 계승하고, 단양을 알리는 소중한 역사자원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