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낮 12시쯤 충북 괴산군 괴산읍 대덕리 충북 수산식품산업거점단지. 유리로 된 1층 직판장들은 저마다 종이 상자로 가득 차 있었다. 아침마다 수산물 거래가 이뤄져야 할 곳이 마치 창고처럼 변해 있었다. 직판장 옆 식당가는 가게 6곳 중 3곳이 불이 꺼진 채 문이 닫혀 있었다. 식당 앞 수조는 텅 비어 먼지뿐이었다. 이곳에서 5년째 횟집을 운영 중인 이모(63)씨는 “영업 중인 곳도 인근 공사장 인부들 식당 같은 역할만 한다. 일반 손님은 하루 한두 팀 받기도 어려운 날이 많다”고 말했다.
충북도가 야심 차게 조성한 충북 수산식품산업거점단지가 문을 연 지 4년이 넘도록 제 기능을 못 하고 있다. 도는 이 단지를 활성화하려고 여러 사업 계획을 내놓고 있지만 사실상 애물단지가 돼 버린 분위기다.
2019년 5월 내륙의 ‘자갈치시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문을 열었다. 수산물 가공 업체를 유치하는 것을 비롯해 수산물 직판장을 열어 신선한 민물고기 등을 팔겠다는 계획이었다. 이른바 민물고기에 특화된 수산 시장인 셈이다. 이를 위해 연면적 7만5623㎡ 부지에 가공 시설(공장) 4곳과 내수면 연구소 사무실, 쏘가리 양식 연구동, 식당 등을 지었다. 충북도는 2013년부터 6년간 국비와 도비 등 250억원을 들여 만든 이 단지가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개장 5년째를 맞는 현재 모습은 썰렁했다. 생산부터 가공, 유통, 소비, 관광까지 연계하려던 충북도 계획과 달리 유통과 소비, 관광 분야 기반 시설을 아직까지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북적일 것으로 예상했던 2층짜리 수산물 직판장은 지난해 건물 1층을 통째로 한 업체와 계약을 맺었지만 아직 입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이 건물을 짓는 데만 22억원이 들었다.
증평에서 온 김모(63)씨는 “수산식품산업거점단지라고 해서 다양한 생선을 고르고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곳인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다”며 “마치 짓다가 만 곳처럼 보인다. 이래서 사람들이 찾아오겠느냐”고 했다.
충북도는 최근 이 단지를 살리기 위해 고심 중이다. 우선 112억원을 들여 단지 내 7076㎡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 아쿠아리움을 만들 예정이다. 아쿠아리움에는 어류 전시관과 레이크파크관, 아쿠아포닉스관 등을 넣겠다는 계획이다. 연말 준공이 목표다. 또 관광객 유치를 위해 수산 식품 산업 관련 전시회, 박람회, 시식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열 수 있도록 조례도 개정하기로 했다. 지난해 건립한 제2가공·유통 시설도 올해 내로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아쿠아리움이 들어서고 조례가 개정되더라도 상황이 얼마나 나아질지 모르겠다는 게 이 단지 상인들의 반응이다. 이곳에서 영업을 준비 중인 한 상인은 “아쿠아리움이 생겨 가족 단위 관광객이 늘기는 하겠지만, 아쿠아리움을 보고 나온 관광객들이 곧바로 회나 수산물을 먹을지 의문”이라며 “수산물 직판장이 활발히 운영되고 소비자가 몰려야 이곳이 제대로 살아날 것”이라고 했다.
앞서 2021년에는 임대로만 운영되던 가공·유통 시설 입주 방식을 임대 및 분양으로 확대하는 내용으로 조례를 개정했다. 작년에는 취급 품목에 수산 식품 외에 농식품을 더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며 조례를 고쳤지만 아직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충북 지역 전문가들은 “전형적 예산 낭비 사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이선영 충북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막대한 예산을 들이고도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계획부터 추진 과정 전반이 잘못된 것”이라며 “더 이상 예산을 낭비하지 말고 하루빨리 대책을 세워 지역을 위한 시설로 탈바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강환 배재대 관광축제한류대학원장은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이중 삼중 대책과 사업을 벌이면 당초 계획한 목표나 방향을 잃는다”면서 “시설의 입지 여건과 수요, 테마 등을 면밀하게 분석해 중·장기적 방향을 잘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