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일본식 장기 불황의 문턱에 섰다. 내년(1.9%), 내후년(1.8%) 모두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2% 아래에 떨어지는 저성장 터널로 진입한다는 것이 한국은행 경고다. 석유 파동,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와 같은 외부 충격에 한국 경제 성장률이 2%를 밑돈 적이 그간 6차례 있었지만, 2년 연속은 처음이다.

그래픽=김현국

지금 한국 경제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초입과 비슷하다. 한국 등 신흥국에 제조업을 야금야금 내주던 일본은 자산 시장 거품 붕괴와 함께 1990년대 들어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다. 일본 성장률은 1991년 3.5%에서 1992년 0.9%, 1993년 -0.5%로 급전 직하한 뒤 30년간 0%대 제로 성장에 갇혔다.

올해 우리나라 성장률 전망치(2.2%)는 일본 장기 불황 직전보다 낮다. 재정 적자와 가계부채 비율은 일본의 1990년대 초반과 닮았다.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했듯, 산업 경쟁력에서 이웃나라 중국에 밀려나는 모습도 비슷하다. 인구구조의 고령화는 30년 전 일본보다 심각하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저물가·저금리로 대표되는 일본화(Japanification)에 빠져 ‘신흥쇠퇴국(新興衰退國)’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동안 신성장 동력 산업을 찾고, 구조 개혁을 하고, 수출 의존 경제 구조를 바꾸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이해 갈등을 조정해야 할 정치권이 개혁을 외면하는 것도 불황 초입의 일본과 공통점이다.

1970~80년대 세계 2위 경제 대국이었던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을 버틸 체력이라도 있었다. 20년 넘게 축적한 자본으로 세계 최대의 채권 보유국이 됐고, 기축 통화를 보유하고 있었다. 김정식 연세대 명예교수는 “올해 기준으로 세계 14위인 한국 경제는 일본에 비해 축적한 자본이 부족하기 때문에 한번 저성장 터널로 들어가면 돌이키기 어렵다”고 했다.

☞일본화 (Japanification)

한때 애니메이션 등 일본 문화의 세계적인 확산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됐다. 하지만 1990년대 초반 일본이 버블 붕괴 이후 장기 불황에 빠진 뒤에는 장기간 저성장, 저물가, 저금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식 장기 침체의 동의어로 사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