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 24시]

우리나라 대표 해양 관광지로 거듭난 여수의 밤바다 전경./전남도

전남 여수시가 통합 청사 논란으로 후끈하다. ‘3여(麗,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으로 1998년 4월 탄생한 여수시는 통합 청사 문제를 두고 23년째 진통을 겪고 있다. 통합 당시 ‘통합 청사는 여천시에 둔다’고 세 지자체가 합의했지만, 공염불에 불과했다.

청사 이전에 따른 도심 공동화 현상을 우려한 주민 여론에 떠밀린 정치권이 청사 이전·통합에 반대하면서 통합 청사 논의는 공전을 거듭했다. 소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한 정치 집단의 목소리가 통합 이후에도 위력을 발휘했다. 시의회 의원들은 옛 지역을 기반으로 계파가 나뉘어 아귀다툼을 그치지 않고 있다.

여수 학동 1청사./여수시

◇여수 통합 청사 진통 ‘23년째’

최근 권오봉 여수시장이 통합 청사 문제를 거론하면서 지역이 찬반으로 나뉘고 있다. 여수시는 통합 청사에 부정적인 일부의 여론을 의식해 본청 옆에 짓는 통합 신청사를 ‘별관’이라고 부른다. 권 시장은 지난 19일 “별관 증축 논란은 시민 합동 여론 조사로 해결하자”고 시의회에 제안했다.

그는 “여수시와 시의회는 시민의 뜻에 따라 서로 논의를 거쳐 여수시 본청사 별관 증축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객관적인 여론조사를 추진하고 시민 의견을 수용하자”고 말했다. 권 시장은 “3여 통합의 위대한 시민 정신은 여수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으나, 청사 문제는 23년간 실현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며 “여론조사로 청사 문제를 조기에 매듭짓자”고 말했다.

하지만 다음날 전창곤 여수시의회 의장은 권 시장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코로나 전쟁과 경제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기”라며 “별관 증축은 현 상황에서 적절치 않다”고 선을 그었다. 전 의장은 “통합 청사보다는 시민 통합이 먼저”라며 “별관 증축 문제로 시민들이 갈등하고 대립·분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 시장이 꺼내 든 시민 여론조사 카드는 주춤하는 모양새다. 여서동 지역 의원을 비롯한 정치권과 일부 상인들이 청사 이전을 반대하고 있다.

여수 여서 2청사./여수시

지역은 찬반으로 갈리고 있다. 김회재(여수을) 국회의원은 “시민의 행정 편의 증대와 행정 서비스 질을 높이기 위해 통합 청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 의원은 “광주광역시와 전남도, 대구시와 경북도의 행정 통합 논의 등 전국 각 지역이 통합을 논의하고 있다”며 “인구 28만의 소도시에 청사가 8개다. 미래 발전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말했다.

여수시주민자치협의회 등 7개 시민단체는 “청사 별관 증축 문제를 소수 시의원의 결정이 아닌 대다수 시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4월 여수시가 실시한 본청사 별관 증축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 67%, 반대 33%로 나타났다. 2청사가 있는 여서·문수·미평 지역에서도 58.7%가 찬성했다. 2018년 여수지역사회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통합 청사 건립에 대해 찬성은 40.5%, 반대는 28.5%였다.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여수시민협은 “행정력과 세금 낭비가 뻔한 사업이다. 시민은 떠나고 공무원만 남는 도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400억원이라는 막대한 시민 혈세를 쏟아붓는 별관 신축을 철회하라”고 말했다. 주철현(여수갑) 국회의원은 통합 청사가 아니라 오히려 여서·문수지구의 활성화를 위해 2청사 복원을 추진 중이다. 일부 시의원들도 2청사의 기능을 회복하자는 데 동의하고 있다. 여수의 두 국회의원이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것이다.

여수시는 본청 뒤편 주차장에 392억원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4층, 연면적 1만3200㎡ 규모의 별관을 만들기로 했다. 2023년 완공이 목표다. 사실상 통합 청사 기능을 하는 건물이다. 시의회가 잇따라 별관 증축에 반대하자 여수시는 난감해하고 있다. 시의회는 관련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여수시 관계자는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시민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별관 증축을 추진 중”이라며 “의회를 더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여수 국동 3청사./여수시

◇청사 8곳… “결재받자고 1시간 이동”

인구 28만의 여수(예산 1조3000억원·재정자립도 27%)에는 본청사를 포함해 큰 청사가 3곳 있다. 이밖에 본청 기능이 떨어져 나간 5개 청사가 더 있다. 총 8개의 청사가 있는 것이다. 통합 전 여천시청이 있던 자리에 본청인 1청사(학동청사)가, 옛 여수시청 자리엔 시의회와 2청사(여서청사)가, 옛 여천군청 자리엔 3청사(돌산청사)가 있었다.

돌산청사는 2017년 10월 국제교육원으로 활용 중이다. 3청사는 문수동으로 옮겨 여수교육지원청 건물을 빌려 사용했다. 하지만 3청사는 2018년 정밀 안전진단에서 D등급을 받았다. 이후 청사 통합론이 제기됐다. 3청사는 지난 3월 국동으로 다시 자리를 옮겼다. 두 차례 이사를 거쳐 건물을 고치면서 사업비 65억원을 썼다. 여수시는 “통합 청사가 있었다면 아낄 수 있었던 예산”이라고 했다.

여수시 공무원은 1344명. 1청사에 711명, 2청사에 108명, 3청사에 191명 등이 흩어져 근무한다. 월·수·금요일 간부회의 때는 간부들이 1청사로 출근해 이후 각자의 근무지로 향한다. 또 2·3청사 등의 직원들은 본청에서 결재받기 위해 길거리를 오가며 평균적으로 1시간을 허비한다고 한다. 시의회 회기 때는 국장을 필두로 과장과 계장들이 승합차에 몸을 싣고 시의회가 있는 2청사로 ‘집단 이동’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오죽했으면 청사 간 셔틀버스를 운영 중이다.

여수 8개 청사 현황./여수시

시민 불편도 속출하고 있다. 민원 해결을 위해 본청을 찾았다가 헛걸음을 하는 경우가 많다. 청사 통합 지연에 따른 불편 민원은 연간 3만3000건에 달한다. 여수시는 “1년에 3만3000명의 시민이 청사를 잘못 찾아 불편을 겪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3여 통합 정신 살려야”

전남 동부권에 있는 여수·순천·광양은 ‘전남 3룡(龍)’으로 불린다. 가장 먼저 발전한 곳이 여수시다. 정부는 국토 균형 발전을 위해 1967년 여수(옛 여천군 삼일면)에 호남정유(GS칼텍스 전신)를 건립했다.

한 해 앞서 1966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연두 순시차 이곳을 방문했을 때 주민들이 ‘석유화학 시설을 지어달라’며 집단 민원에 나섰고, 결국 성사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여기에 1973년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계획이 맞물리면서 여수 국가산업단지가 본격 건설됐다.

지금의 여수시는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1998년 4월 여수시(45㎢·18만6000명)와 택지 지구인 여천시(107㎢·7만4000명), 여천군(344㎢·6만8000명)이 통합하면서 탄생했다. 당시 여천시와 여천군은 흡수 통합을 우려해 완강히 반대했다. 하지만 여수시가 통합 청사는 여천시청에 두고, 상공회의소를 여천으로 이전하겠다는 등 6개 양보안을 제시해 통합을 이뤄냈다. 통합된 지 23년이 지났으나 소지역주의는 여전히 기승을 부린다.

여수산단과 진달래./전남도

수산업 쇠퇴로 발전이 정체됐던 여수시는 통합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여수상의는 “통합 이후 산업단지와 배후 택지 지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면서 여수의 경제력과 생활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선됐다”고 말했다. 3여 통합이 없었다면 2012년 엑스포 유치도 실패했을 거란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여수는 엑스포 개최 이후 우리나라 대표 해양 관광도시로 거듭났다. 지역에선 “통합의 정신을 살리자”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