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후 전남 여수시 경호동 대경도(大鏡島). 육지에서 500m 떨어진 이 곳은 배로 5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섬이다. 크기가 237만4000㎡로 서울 여의도(290만㎡)보다 작지만 투자 전문 회사 미래에셋이 작년 초 이 일대를 세계적인 휴양 섬인 싱가포르 센토사섬처럼 만들겠다며 개발에 나서면서 관심을 끌었던 곳이다. 하지만 이날 공사가 한창이어야 할 섬에는 공사 차량과 근로자가 전혀 없었다. 착공 1년여 만에 부지 조성 공사가 일제히 중단된 것이다. ‘한국의 센토사’를 꿈꿨던 경도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미래에셋은 작년 2월 경도 일대 215만㎡(약 65만평)에 실내외 워터파크, 콘도미니엄, 해수 풀장, 인공 해변, 쇼핑 센터, 6성급 호텔, 타워형 레지던스, 해상 케이블카 등을 만들겠다고 했다. 투자 금액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전남지사이던 2016년 무렵 광주일고 동문 후배인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을 설득해 사업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4월부터 부지 조성 공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 4월부터 지역에서 이 사업이 ‘여수판 엘시티’라는 의혹이 불거졌다. 미래에셋이 여러 시설 중 레지던스 11동(1184실)을 먼저 짓고 있다는 점을 두고 “관광 시설 조성은 뒷전이고 돈이 되는 분양 시설인 레지던스만 우선 추진한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땅 투기와 부산 레지던스 해운대 엘시티(LCT)가 특혜 분양 의혹으로 잡음이 나오던 때였다. ‘경도 생활형 숙박 시설 건축 반대 범시민사회단체추진위원회’까지 결성됐다.
미래에셋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시민 단체 등의 주장과 달리 부산 엘시티 사건 여파로 지난 4일 건축법이 개정돼 레지던스는 주거용으로 소유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숙박업으로 등록해 임대만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채창선 미래에셋 부동산개발본부장은 “레지던스를 먼저 짓는다는 건 이미 2019년에 공개한 내용인데 거듭 해명을 해도 오해가 풀리지 않아 답답하다”고 했다.
결국 미래에셋은 최근 시의회에서 “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자 이 발표는 또 다른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역 일각에선 “이러다 정말 아예 사업을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근거가 별로 없는 의혹 제기로 지역에 필요한 1조원짜리 사업이 좌초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시의회에서는 미래에셋의 태도를 문제 삼고 있다. 여수시의회 문갑태 의원은 “미래에셋이 지역민들이 반대하는 이유에 대해 해명할 것은 우선 해명해야 하는데 무조건 사업을 중단시킨 것은 압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