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정 광주시장 당선자가 방송 토론회에서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보겠다”고 말했다가 이에 대한 5·18 단체의 항의가 나오자 “유공자 명단 공개는 명백히 위법”이라며 입장을 선회했다.
5·18 유공자 명단 공개 문제는 지난 21일 ‘지방 소멸’을 주제로 방송된 MBC ‘100분 토론’에서 거론됐다. 패널로는 강 당선자와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자가 나왔는데, 토론 과정에서 ‘입장을 바꿔 서로의 지역에서 시장에 당선됐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가 나오자 홍 당선자가 이 문제를 꺼내 들었다.
홍 당선자는 “광주 현대사의 가장 자랑스러운 게 5·18 민주화운동”이라며 “제가 광주시장이라면, 민주화 운동의 유공자들, 얼마나 자랑스럽나. 명단 공개를 하겠다”라고 말했다.
홍 당선자는 이어 “이렇게 자랑스러운 사람들이 역사에 있었다, 왜 그걸 왜 공개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그게 무슨 죄지은 일이 아니지 않나. 얼마나 자랑스러운 역사인가. 그렇다면 유공자 자녀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워하겠나”라고 했다.
강 당선자는 “명단 공개는 법으로 제어 받고 있다. 법으로 그것은 통제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고, 홍 당선자는 “법을 개정하면 된다”고 답했다. 그 뒤 강 당선자는 이어지는 토론 과정에서 “명단공개, 좋다. 5·18 명단 공개 문제는 정말 시장으로서 검토를 한번 해보겠다. 진지하게”라고 말했다.
5·18 단체는 토론 방송에서 유공자 명단 공개를 언급한 홍 당선자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들은 23일 낸 성명에서 “5·18 민주 유공자 명단은 광주 서구 5·18 자유공원 내에 추모공간에 공개돼 있다”면서 “5·18 유공자를 폄훼하고 왜곡하는 망국적 언행으로 국민통합을 저해하는 홍 당선자는 광주 시민은 물론 전 국민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했다.
5·18 단체의 항의 성명이 나오자 강 당선자는 입장문을 내고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는 명백히 위법으로, 관련 단체와 지역사회의 논의와 합의가 먼저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 당선자 측은 “홍 당선자가 법을 개정하면 가능하다고 하자 답변했던 ‘명단 공개 검토’ 발언은, 법 개정을 포함해 지역사회와 5·18 단체, 정치권 등의 진지한 검토·논의·합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라고 했다.
5·18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는 꾸준히 제기돼 온 문제다. 명단과 공적(功績)을 공개해 ‘가짜 유공자’를 가려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2018년 7월에는 시민 100여명이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5·18 유공자 이름과 무슨 공적인지를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한 적도 있다.
당시 법원은 “5·18 명단은 공개 대상이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비공개로 보호되는 사생활 비밀 등 이익이 공개로 인한 공익보다 크다는 게 이유였다. 다른 국가유공자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것도 비공개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대법원은 2020년 9월 이 판결을 확정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2022년 5월 기준으로 5·18 민주 유공자는 4451명이다. 5·18 당시 사망자 또는 행방불명자, 부상자, 희생자 본인과 그 유족을 포함한 숫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