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와 전남·북도 단체장들이 설립 5년째를 맞은 광주 소재 한국학호남진흥원을 이전해 전북 부안에 설립 예정인 전라유학진흥원과 통합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전북은 ‘지역 상생’의 의미가 있다며 통합 방안에 찬성하고 있지만, 광주·전남 지역 학계 등에서 반발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1일 광주시, 전남·북도에 따르면, 최근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 김관영 전북지사는 상생을 위해 한국학호남진흥원을 전라유학진흥원과 통합해 전북 부안에 두기로 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세 단체장은 통합에 원칙적으로 찬성했다. 김관영 전북지사는 “호남권 유학의 통합 연구, 국학 진흥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전라유학진흥원과 한국학호남진흥원을 통합해야 한다”며 “전라유학진흥원이 완공되는 2024년을 기점으로 단계적으로 추진해 2027년까지 최종 통합하겠다”고 밝혔다. 이전 대상지는 전북 부안으로 알려졌다. 세 광역단체 실무자들은 통합·이전과 관련해 두 차례 회의도 열었다고 한다.
한국학호남진흥원 설립은 2000년대 초반부터 광주 학계를 중심으로 시작된 시민운동의 결과였다. 갈수록 사라져가는 고문헌 자료를 수집·보존하고 연구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2017년 출범했다. 광주시공무원교육원에 공간을 마련했다. 애초에는 세 시·도가 함께 추진했지만 전북도는 예산 분담 규모, 진흥원 위치 등에 이견(異見)을 보이면서 결국 사업에서 빠졌다. 전북도는 대신 2018년부터 전라유학진흥원 설립을 독자 추진해오고 있다. 이 기관은 호남 유학 자료의 디지털 플랫폼 구축에 중점을 두고 있다.
통합·이전 추진이 알려지자 광주·전남의 문헌 기증·기탁자들이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기호철씨 등 한국학호남진흥원에 문헌을 기증·기탁한 사람들은 “통합을 강행할 경우 자료를 모두 회수하자”고 결의했다. 김희태 전 전남도문화재위원은 “기증 자료를 즉각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4년 전 고문헌 자료 270점, 근·현대 자료 1만여 점을 기증했다. 그는 “귀중한 자료를 가까운 곳에 두고 연구 자료로도 활용된다고 해서 기증했다”며 “왜 갑자기 전북으로 이전한다고 하는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300여 점의 서화 자료 기증 약속도 철회했다. 진흥원의 기증·기탁 자료는 모두 5만3000여 점이다.
학계에서도 통합·이전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최영태 전남대 명예교수(사학과)는 “진흥원 설립 후 많은 문헌 자료를 수집했고, 상당한 연구 성과도 냈다”며 “호남학 연구자 대부분 통합에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독립적으로 활동하면서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은 함께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강정채 전 전남대총장은 “진흥원의 연구 역량을 확충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며 “지금은 통합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광주시·전남도의회도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전남도의회 나광국 의원은 “의견 수렴 없이 논의를 진행한 것은 200만 도민과 전남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자치단체장끼리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광주시의회 신수정 의원도 “시가 알리지도 않고 통합·이전을 추진했다”며 “의회에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전북도에서는 통합·이전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천선미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세 단체장이 통합 필요성에 대해 큰 틀에서 공감대를 형성했다”며 “충분한 의견 수렴과 협의 과정을 통해 전북·광주·전남이 상생하는 대표 사례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병기 전북대 명예교수는 “현재 정부로부터 전라유학진흥원 관련 예산을 확보해 둔 상황이고 부지 매입까지 마무리돼 가고 있다”며 “기관 운영 효율성과 예산 절약 측면에서 전북 부안에 통합해서 진흥원을 만드는 게 타당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김영신 전남도 관광문화체육국장은 “통합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며 “위치나 통합 방식에는 협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요성 광주시 문화체육실장은 “학계 등의 의견도 수렴해 세 시·도 간 협의를 통해서 진행할 것”이라고 했다.
/권경안·김정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