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정상을 가려는 탐방객들이 성판악탐방안내소 입구에서 QR코드로 체크한 뒤 입장하고 있다./제주도 세계유산본부

7일 오후 제주도 한라산 국립공원 성판악휴게소. 백록담으로 향하는 관광객들이 해발 750m 지점에 있는 이곳 등반로 입구 게이트를 속속 통과했다. 정상 등반이 가능한 입산 제한 시간인 오후 1시, 이날 906번째 등반객이 통과하자 게이트가 닫혔다. 성판악 등반로 하루 통과 허용 인원 1000명 중 이날 탐방을 예약한 사람은 993명. 87명이 아무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한라산 등반로를 관리하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이런 ‘노 쇼’(No-Show·예약 부도) 등반객이 매월 3000~4000명에 달한다”고 했다. 최근 넉 달간 탐방 예약자 노쇼 비율은 8~16%에 달했다.

한라산 국립공원은 지난해 코로나 확산으로 일시 중단했던 탐방 예약제를 지난 1월부터 재개했다. 탐방 예약제는 한꺼번에 많은 관광객이 몰려 자연환경이 훼손되는 것을 막으려 그 수를 제한하는 조치다. 백록담까지 등반이 가능한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를 각각 하루 1000명과 500명만 오를 수 있도록 제한했다.

탐방객들은 온라인 예약 시스템으로 예약과 취소를 간단하게 할 수 있다. 특히 코로나로 해외여행이 제한돼 제주도로 관광객이 몰리면서 주말과 휴일은 탐방 신청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된다. 이 때문에 예약한 뒤 미리 취소하지 않고 현장에 나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의 탐방 기회를 빼앗는 ‘노쇼족(族)’은 유명 관광지의 공적(公敵)으로 꼽힌다. 지난 1분기(1~3월)에만 한라산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 탐방을 예약하고 나타나지 않은 ‘예약 부도자’가 1만1981명이었다.

제주도는 처음 예약 부도를 내면 석 달간 한라산 탐방을 제한한다. 두 번째 예약 부도를 내면 1년간 제한한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리 높지 않다. 제주도 관계자는 “지난해 25%까지 치솟았던 노쇼 비율이 올해부터 시간대별 예약을 받고 벌칙을 부과하면서 다소 줄어들고 있지만, 노쇼족이 아직 적지 않다”고 했다.

이 같은 노쇼 현상은 지리산과 설악산 등 국내 곳곳의 명산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국립공원공단은 지리산 노고단 정상 탐방로에서 2019년부터 연중 탐방 예약제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 최대 등반객은 1920명이다. 2019년 22.2%였던 예약 부도율이 지난해에는 28%로 늘어났다.

설악산 곰배령도 지난달 21일부터 탐방 예약제를 시행하고 있다. 국립공원 예약 시스템을 통해 하루 300명으로 제한한다. 지난달에 584명이 예약했는데 109명(18.7%)이 노쇼였다. 이달 들어선 지난 6일까지 617명이 탐방을 예약했지만, 173명(28%)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문성종 제주한라대 관광경영과 교수는 “탐방 예약제 노쇼는 사회적 약속을 깨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등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며 “남을 배려하는 관광 문화를 위해서라도 약속을 지키거나 안 되면 미리 취소하는 시민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