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는 ‘용적률 이전 제도(Transfer of Development Right·TDR)’ 도입을 추진 중인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용적률 이전 제도는 고도(高度), 문화재 등 규제에 막혀 원래 높이만큼 지을 수 없는 건물이 주변 건물에 자기 용적률을 판매하는 제도다. 미국 뉴욕은 브로드웨이의 오래된 극장을 보전하는 방법으로 용적률 이전 제도를 활용했고, 일본 도쿄는 도쿄역의 용적률을 주변 건물에 파는 방식으로 도쿄역 복원 비용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내년 초 3억원을 들여 ‘용적 거래 실행 모델 개발 용역’을 발주할 계획이다. 이 용역을 통해 서울시는 실제 용적률을 사고팔 수 있는 지역을 찾아내고, 용적률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을 제시하기로 했다. 또 민간의 자율성 보장을 위해 공공이 지원하는 거래 방식도 찾아 즉시 적용 가능한 모델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용적률 이전 제도는 이른바 ‘공중권’을 거래하는 제도다. 높이 제한으로 묶인 남산 인근이나 앙각 규제에 막힌 고궁 인근에서 각종 규제로 불가피하게 건물을 용적률보다 낮게 지은 경우, 남은 용적률을 다른 지역이나 다른 건물에 팔 수 있는 것이다. 서울 안에서는 지역 제한 없이 이런 거래가 가능해진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규제로 막혀 있던 서울의 도심 개발이 획기적으로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가 이 계획을 추진하는 것은 지난 6월 오세훈 시장이 일본 도쿄의 대표적 고밀 개발 사례인 마루노우치 일대를 방문해 발표했던 ‘서울 대개조’ 정책의 일환이다. 도심 녹지를 보존하면서도 용적률을 높여 효율적인 도심 개발을 하겠다는 것이다.
뉴욕과 도쿄 등 땅이 부족한 대도시들은 일찍이 TDR을 도입해 도심 개발을 추진 중이다. 뉴욕은 1968년 TDR을 도입했다. 2020년 완공된 맨해튼의 ‘원밴더빌트’는 461m로, 미국에서 다섯째로 높은 빌딩이다. 그랜드센트럴역 등 인근 빌딩들의 용적률을 매입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뉴욕 현대미술관의 남은 용적률로 ‘53W53′ 빌딩도 지어졌다.
2007년 완공된 도쿄 도심의 신마루노우치 빌딩을 시작으로 야에스 역전광장 등은 도쿄역의 용적률을 받아 높이 올렸다. 2009년 마루노우치의 ‘브릭스퀘어’ 빌딩이 기본 용적률 1300%를 초과해 1565%로 지은 것도 도쿄역의 용적률 덕분이었다.
서울시도 몇 차례 시도가 있었다. 2009년 주택가 등 저밀관리구역을 역세권 등 고밀개발구역과 결합해 용적률을 이전·개발할 수 있도록 하는 결합정비사업 제도를 도입했지만, 이해 당사자들끼리 합의가 쉽지 않아 활용도가 낮은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2012년에도 용역을 실시하고 등기법, 국토계획법 등을 검토했지만 TDR 적용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이번 용역에서는 기존 법령을 최대한 활용해 실행 가능한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용적률 이전 제도는 고도 제한 등 규제로 땅 소유주가 자신의 재산을 활용할 수 없는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며 “단 지역 간 지가 차이를 고려해 합리적으로 용적률 거래 비율이 정해지도록 법률과 시행령 등을 정교하게 짜야 할 것”이라고 했다.
☞앙각(仰角)규제
문화재 주변 100m 이내에 건물을 지으려면, 문화재 경계 담장에서 27도 위로 그은 사선 높이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이다. 이는 서울시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