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보건소에서 코로나 관련 업무를 하던 간호직 공무원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가운데 유족이 장례식장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부산 한 보건소의 간호직 공무원이 코로나 이후 격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코로나 대응 일선에서 일하는 의료진과 공무원들은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이다. 코로나 장기화에 따라 방역 현장에선 피로 누적과 인력 부족 등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6일 부산 경찰과 동구 등에 따르면 지난 23일 오전 8시10분쯤 부산 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동구보건소 소속 간호직 공무원 이모(33)씨가 극단적 선택을 해 숨졌다. 별도의 유서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갈수록 가중되는 코로나 업무로 인해 힘들어 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씨는 최근 동구 내 한 정신병원에서 확진자가 발생해 코호트 격리에 들어가자 해당 병원을 담당·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유족들은 “고인의 휴대전화 속 단체 채팅방을 보면 직원들이 순서대로 코호트 병원을 맡고 있는데, 고인이 ‘정신건강관리 업무 담당’이라는 이유로 순서가 아님에도 업무를 맡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의 한 동료는 “당시 시간선택제 선생님이 해당 병원을 담당하고 계셨는데, 병원이 코호트 격리 되면서 담당자를 정하게 됐다”며 “정신건강관리 업무를 맡는 이 선생님이 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해 업무가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코로나 격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부산의 간호직 공무원 이씨가 생전 형부와 나눈 카카오톡 대화. /이씨 유족 제공

이씨가 생전 가족들과 나눈 대화에서는 코호트 병원 담당 업무를 맡게 된 직후 힘들어하는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씨는 지난 18일 이후 형부와의 모바일 채팅 대화에서 “오늘 진짜 폰 확인할 시간이 없었어요”, “이번주 내내 야근, 코로나 큰 건 터져서요”, “보건소 일 때문에 호텔 뷔페 못갈 것 같아요, 취소해 줄 수 있나요?”라고 했다.

이씨는 남편과의 채팅에서도 “주말에도 일을 나가야 하냐”는 질문에 “상황에 따라? 오늘 좀 지나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씨는 보건소 상사에게 “업무가 너무 힘들다”는 취지로 업무 교체 의사도 피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의 요청에 대해 업무 조정을 두고 부서 간 조율이 이뤄지지 않고, ‘동료 직원들에게 업무를 떠넘겨 피해를 줄 수 있겠다'란 생각에 이씨는 그대로 이 일을 계속 맡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씨는 자신의 휴대전화로 ‘두통’, ‘고민상담전화’, ‘질병휴직진단서’, ‘면직’, ‘공황장애 증상’ 등의 단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다 급기야 스스로 ‘극단적 선택’ 등을 검색했다.

코로나 격무를 호소하던 부산의 간호직 공무원 이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직전 자신의 휴대전화로 인터넷에 검색을 한 내용들. /이씨 유족 제공

이씨는 숨지기 전날인 지난 22일 토요일에도 출근해 오후 8시 넘어서야 퇴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힘들어하는 이씨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남편이 퇴근한 이씨와 영화관을 찾기도 했지만 이씨는 끝내 몇 시간 뒤, 남편을 뒤로 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씨 남편은 “아내가 평상 시 우울증을 앓거나, 약을 먹었다거나 한 사람도 아니다”며 “최근 업무와 관련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것 같은데, 아내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구하나 속 시원히 이야기해주지 않아 답답하다. 이렇게 출상을 하면 그저 개인의 죽음으로 끝나게 될까 두렵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부산 동구청 관계자는 “현재 진상 파악 중에 있으며, 보건소 측에도 업무 분장과 관련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씨 사망과 관련, 코로나 대응 업무를 하고 있는 일선 보건소 직원들 사이에선 “터질게 터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씨와 함께 일한 한 동료는 “코로나 업무만 해도 역학조사, 선별진료소 파견근무, 검체 조사, 백신 접종 등 산더미다. 여기에 원래 갖고 있는 건강증진사업이나, 출산관련 업무, 민원 응대에 행정 업무까지 해야하다보니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직원 피로도는 상상 이상”이라며 “(이씨가) 평소 책임감이 상당한데다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속으로 얼마나 힘들어 했을까 싶다”고 울먹였다.

대한간호협회 한 관계자는 “보건소는 코로나 대응 최전방인데도 한정된 인력 탓에 업무 과부하가 심각한 상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지자체 내 역학조사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력과 함께 보건소 간호직 공무원을 늘리고, 코로나 대응 일선 인력들에 대한 고충 상담 통로를 마련하거나 수당 개선을 통한 보상책 마련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