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가 디딤돌로 쓰였던 비석이 대한제국 때 발생한 대구 화재 의연금을 낸 이들을 기린 공덕비임을 밝혀낸 연구자들에게 감사패가 전달됐다. 이 비석은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인 서상돈의 이름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백성들이 낸 의연금 기록이 새겨져 있다.
대구소방안전본부는 이문기 경북대 명예교수와 김용익 전 계성고 교사에게 소방청장 명의의 감사장과 감사패를 전달했다고 13일 밝혔다. 대구 중구의 한 건물 앞에 서 있던 이 비석이 대구 최초의 화재 의연공덕비임을 연구를 통해 밝혀낸 공로다.
‘대구 영시(令市·약령시) 화재 의연 공덕비’(가칭)는 단순한 민가 디딤돌에서 지난 2003년 한약방을 운영하던 박순동씨를 통해 세상에 다시 드러났다. 당시 비석은 대구 중구의 한 민가에서 눕혀 두고 마루로 올라가는 디딤돌로 쓰이고 있었다. 비석 표면에 글자가 적힌 것을 본 박씨가 소유주에게 양도를 요청했다. 양도받은 박씨는 비석을 당시 운영하던 자신의 한약방 건물 앞에 세워뒀다. 이 한약방은 현재 카페로 바뀌었다.
하지만 비석의 정체는 20년 가까이 미궁에 빠져 있었다. 일부 연구자들이 화재 의연금과 관련됐다는 사실은 파악했지만, 비석에 새겨진 글자에 대한 해독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과거 대구 계성고 교사로서 역사과목을 가르쳤던 김용익씨가 평소 비석을 주의 깊게 관찰하다 경북대 명예교수 이문기씨에게 이 비석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
지난 5~6월 이 교수는 탁본 작업 등으로 비석 전문(全文)을 해독했다. 이를 통해 비석이 대한제국 시기인 1900년(광무 4년) 6월에 세워졌고, 1899년 대구 약령시에서 발생한 화재 피해 복구를 위해 의연금을 낸 이들의 명단과 금액, 지출 내역 등을 새겼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대한제국 시기 발간된 일간지 황성신문에 따르면 1899년 12월 2일 새벽 대구 약령시에서 화재가 발생해 경상감영의 입구인 홍살문 등과 가게 19곳, 민가 5호를 태웠다. 화재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하자 당시 경상도관찰사 김직현과 대구군수 김영호 등 고위 관료들이 의연금을 냈고, 훗날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기업인 서상돈과 백성들이 돈을 보탰다. 당시 의연금은 총 5487냥이 모였는데 이중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백성들이 보낸 의연금이 1556냥으로, 의연금 총액의 3분의 1에 달했다.
의연금은 불에 탄 민가를 구휼하고 가게의 물건에 대한 값을 보상하는데 사용됐다. 이 교수는 “비석에 새겨진 이들은 모두 7년 후 국채보상운동에서도 나라 빚을 갚고자 애썼다”면서 “대구 영시 화재 의연금 모금은 국채보상운동의 씨앗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귀중한 기록”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가 기증한 비석 탁본과 자료들은 오는 2024년 7월 경기도 광명에서 개관이 예정된 국립소방박물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정남구 대구소방안전본부장은 “화재 의연공덕비를 발굴하고 내용을 밝혀 대구 소방사(史)에 기여해주신 두 분에게 감사 말씀을 전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