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울산 울주군 범서읍 태화강 망성교 인근. 두 손에 쌍안경을 든 탐조객(探鳥客)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이들은 천연기념물인 원앙을 보고 “마치 나무로 조각한 것처럼 아름답다”고 했다. 울산 철새 여행 버스를 타고 이들을 안내하던 이상례 울산시 자연환경 해설사가 “원앙은 요즘 번식기라 수컷의 깃털 색이 아주 화려하다”고 설명하자 탐조객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태화강 중류인 이곳에선 이날 원앙 외에도 까만 갑옷 같은 날개를 퍼덕이며 물을 털어내는 민물가마우지, 물수제비를 뜨듯 수면 위로 날아오르는 청둥오리 떼, 우아하게 강가를 거니는 중대백로 등 다양한 철새 수백마리를 볼 수 있었다. 울산 동구에서 왔다는 이명희(47)씨는 “책과 TV에서만 보던 철새를 가까이서 보니 신기하다”며 “울산에 살면서도 이렇게 많은 철새가 오는 줄 처음 알았다”고 했다.
◇철새 14만마리 찾는 태화강에 ‘철새 여행 버스’
국내 최대 도심 철새 도래지인 울산 태화강이 생태 관광지로 뜨고 있다. 태화강국가정원 내 십리대숲과 인근 삼호대숲 등을 둥지 삼아 이곳을 찾는 철새가 늘면서 울산시는 태화강을 대표적 철새 관광지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울산에선 태화강 물줄기를 따라 중구와 남구, 울주군, 북구 곳곳에서 철새를 만날 수 있다. 여름 철새는 동남아 등지에서 무더위를 피해 3월부터 9월까지 울산을 찾는다. 겨울 철새는 11월부터 4월까지 몽골, 시베리아 등지에서 추위를 피해 울산에 온다. 3~4월엔 여름 철새와 겨울 철새를 모두 볼 수 있다. 이 시기 만날 수 있는 여름 철새는 중대백로, 황로, 물총새 등이다. 물닭, 알락오리, 흰죽지 같은 겨울 철새도 있다. 철새였지만 텃새가 된 원앙이나 흰뺨검둥오리 등도 볼 수 있다.
울산시는 3월부터 이 새들을 볼 수 있는 철새 여행 버스 운행을 시작했다. 자연환경 해설사와 함께 23인승 전기 버스를 타고 태화강 하구, 울주군 선바위, 중구 동천, 북구 연암 정원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철새 여행 버스는 예약제로 운행되며 비용은 무료다. 울산시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된다. 울산시는 또 남구 삼호철새공원 초화원 인근에선 하중도(河中島) 물새 관찰장도 운영한다. 하중도는 하천 하류로 오면서 물 흐름이 느려져 섬처럼 만들어진 퇴적 지형이다. 자연환경 해설사 2명이 하중도를 찾는 물새에 대해 알려준다.
울산 태화강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죽음의 강’이라고 불렸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거치며 강에 흘러든 생활 오수와 공장 폐수로 오염됐다. 2004년 울산시는 ‘생태 도시 울산’을 선언하며 태화강 살리기에 나섰다. 시민들도 동참했다. 이를 통해 태화강은 은어와 연어, 수달 등 동식물 1000여 종이 사는 맑은 강으로 부활했고, 2019년엔 국가정원으로 지정됐다.
강이 맑아지자 떠났던 철새도 다시 날아들었다. 울산을 찾는 철새 수와 종류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17년 겨울엔 철새 64종 11만485마리가 찾았으나 지난해 겨울엔 97종 14만2165마리가 울산에 왔다. 5년 만에 33종 3만1680마리가 늘었다. 울산을 찾는 철새 중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 생물 1급인 호사비오리와 2급인 노랑부리저어새 등도 있다. 태화강 일대는 2021년 5월 국제 철새 이동 경로 사이트(FNS·Flyway Network Site)에도 등재됐다. 국내 도심 하천이 FNS에 등재된 건 처음이다. 윤석 울산시 환경정책과 주무관은 “도심 하천의 최대 포식자인 철새가 늘어난 것은 강의 생태계가 전반적으로 좋아졌다는 의미”라고 했다.
◇5월에는 국제 철새 심포지엄 개최
울산시는 태화강을 철새 관광지로 키우기 위해 철새 여행 버스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울산시와 남구는 2019년 태화강 인근인 남구 삼호동에 철새 공원과 홍보관 등이 들어선 ‘삼호그린철새마을’을 조성했다. 2021년에는 이곳에 철새 마을 도서관도 문을 열었다. 울산시는 또 기업이 철새 보호를 지원하는 ‘1기업 1철새’ 결연 프로그램도 2021년부터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관광객이 떼까마귀 똥을 맞으면 5만원을 주는 ‘운수대똥’ 행사도 열었다. 윤석 주무관은 “과거에는 배설물 등 때문에 철새를 싫어하는 시민도 많았지만 요즘엔 대부분 철새를 반가운 손님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울산시는 또 2025년까지 180억원을 들여 울주군 범서읍 선바위공원에 ‘울산복합생태관광센터’를 준공할 예정이다. 연면적 4200㎡ 규모로 철새습지센터와 전시홍보관, 연구실, 지질센터 등이 들어선다.
오는 5월 11~12일에는 세계 철새의 날(5월 13일)을 기념해 태화강 철새 서식지 보존 방안 등을 주제로 첫 국제 철새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심포지엄에는 철새 보호를 위해 설립된 국제기구인 ‘동아시아-대양주 철새 이동 경로 파트너십(EAAFP)’과 국제 철새 이동 경로 사이트(FNS)에 등재된 지자체 등이 참여한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국내외 교류를 확대해 철새 도시로서 위상을 넓히고, 생태 관광을 활성화해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