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오후 경북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안동댐 내 수몰 지역 안에 있는 한 농가의 텃밭이 불어난 물에 잠겨 있다. 1976년 안동댐이 준공되면서 만들어진 수몰 지역 안에는 아직까지 47가구, 90여 명의 주민이 이주하지 않고 살고 있다. 사진은 드론으로 촬영한 원천리 모습. /권광순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경북 안동댐에서 보트를 타고 안동호(湖) 안으로 40여 분 달려 도착한 안동시 예안면 계곡리. 호숫가 물에 닿을 듯 말 듯한 집 1채가 보였다. 물은 마당 입구까지 차올랐고, 집 앞 텃밭은 이미 물에 잠겼다. 집주인 김모(84)씨는 “물이 불어 불안해도 집과 토지가 모두 나라 것이어서 피해를 호소할 수도 없는 처지”라고 했다.

안동댐을 짓던 1974년 김씨는 정부에서 주택과 토지 등 2200평에 대한 보상금 200여 만원을 받았다. 당시 읍내의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그는 “보상은 받았지만 조상 대대로 모시는 산소도 많고 400평쯤 되는 개인 땅도 있어 고향을 못 떠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 집 뒤로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 10여 채가 쓰러질 듯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물에 잠겨버린 안동호 속에서 47년째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김씨처럼 정부에서 보상금을 받고 집과 땅이 수용됐는데도 떠나지 못하는 47가구, 90여 명. 대부분 80대를 훌쩍 넘긴 어르신이다. 1971년 4월 안동댐이 착공되면서 51.5㎢에 달하는 안동호가 생겼고, 그 안에 있던 예안·도산·와룡·임동면 일대 3144가구, 2만664명이 터전을 옮겨야 했다. 당시 정부는 이주 조건으로 118억원을 보상했고, 집과 토지는 모두 국가 소유 하천 부지가 됐지만 250가구가 끝까지 남았다. 댐을 준공한 1976년 이후 사망하거나 스스로 떠나 47가구까지 줄어든 것이다. 법대로만 보면 불법 점거인 셈이다. 댐 관리 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와 관할 지방자치단체인 안동시는 이 집들을 ‘지장 가옥’이라고 부른다.

지난달 25일 오후 경북 안동시 안동댐 내 수몰 지역에 사는 한 농민이 물이 불어나자 집 마당에 앉아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권광순 기자

안동댐은 해발 161.7m까지, 총 12억5000만t의 물을 가둘 수 있게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지장 가옥 주민들 때문에 한 번도 제 기능을 모두 사용해 본 적이 없다. 만수위까지 채우면 47가구가 모두 물에 잠기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수자원공사는 늘 2~3억t의 여유를 두고 운용해 왔다.

그러다 최근 댐 물이 불어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달 24일부터 물이 차올라 29일엔 저수량이 11억1220만t, 만수위의 89.1%를 기록했다. 수위도 158.4m에 달했다. 지난 2002년 태풍 루사 때 159.91m 이후로 역대 둘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호수와 가장 가까운 김씨 집은 불과 1m 앞까지 물이 찬 것이다. 곳곳에서 텃밭과 농로가 침수되는 등 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수자원공사는 급히 물을 방류했고, 안동시는 중장비를 동원해 우회 농로를 만들어줬다.

지장 가옥들은 원칙적으로 강제 철거 대상이다. 증개축도 불가능하다. 수자원공사나 환경부, 안동시 등 관련 기관들은 그동안 수십 차례 철거를 시도했지만, 주민들 거부로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한때 해발이 더 높은 곳에 임시 가옥이라도 지어 여생을 보내게 하자는 의견도 나왔지만 실행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어르신들이 사망한 뒤 자연스럽게 공가(空家)가 되면 철거하는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는 셈이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이주를 거부하는 주민 대부분이 고향에 대한 애착이 많고 형편이 어려운 노인”이라며 “개인 토지가 남아있는 경우도 많고 ‘죽어도 고향에서 뼈를 묻겠다’고 계속 버티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댐 운용 실수 등으로 침수 피해 등이 발생하면 최근처럼 오히려 사정해야 하는 형편에 놓이기도 한다. 안동시 관계자는 “아무리 불법 점거 중이라도 주민들의 안전부터 챙겨야 하지 않느냐”며 “누군가 사고라도 나면 공무원들이 책임을 떠안게 되니 다들 이런 일은 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교철 안동대 지구환경공학과 명예교수는 “극한 호우 등 격변하는 이상 기후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댐 기능을 복원하고 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며 “관련 기관이나 지역사회가 공론화해서 문제점을 해결해야 할 시점이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