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닙니다,붉게 말라죽은 소나무들] - 20일 오후 경북 안동의 한 소나무 숲. 소나무재선충병이 번지며 녹색 솔잎이 단풍이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다. 경북도는 재선충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이 일대의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다./신현종 기자

“3월 봄날인데 온 산이 단풍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했어요. 여기가 소나무 무덤입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에서 만난 이수복(69)씨는 뒷산을 가리키며 한숨을 쉬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절반 넘게 말라 죽으면서 푸른 산이 붉은 산이 됐다. 이씨는 “불과 1~2년 새 벌어진 참사”라며 “어릴 적부터 봐온 소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보면 가슴이 짠하다”고 했다.

산 중턱에선 전기톱 소리가 요란했다. 산림청 직원 9명이 갈색으로 변한 소나무를 베어내고 있었다. 베어낸 소나무를 1m 크기로 잘라 차곡차곡 쌓은 뒤 살충제를 흠뻑 뿌렸다. 그 위에 천막을 덮어 씌웠다. 황왕근 영주국유림관리소 산림보호팀장은 “이런 ‘소나무 무덤’이 이 산에만 4000개가 넘는다”며 “온 산이 벌거숭이가 될 판”이라고 했다.

그동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창궐했던 소나무 재선충병이 최근 경북 북부 지역으로 번지고 있다. 산림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5개월간 안동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41만그루로 집계됐다. 경북도와 안동시는 안동 도산면, 녹전면, 예안면 등 3곳을 ‘방어선’으로 정하고 ‘방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김병휘 안동시 산림과장은 “그동안 포항, 울진, 경주 등을 중심으로 번졌던 재선충병이 올해는 안동, 봉화 등 북부 지역까지 올라왔다”며 “자칫 소백산과 태백산을 넘어 재선충병 청정 지역인 강원도까지 확산될까 봐 ‘마지노선’을 치고 방제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녹전면 원천리 일대 야산에서 산림청 관계자들이 죽은 소나무를 모아 훈증처리 작업을 하고 있다. /신현종 기자

봉화군에선 작년 11월부터 소나무 1만2665그루를 베어냈다. 봉화군 관계자는 “재선충병 증상을 보이는 소나무가 있으면 선제적으로 반경 1㎞ 안에 있는 소나무를 전부 베어내고 있다”며 “우리도 다 큰 소나무를 잘라내는 게 아깝지만 더 많은 소나무를 살리기 위해 눈 찔끔 감고 작업하고 있다”고 했다.

재선충은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에 기생하는 1㎜ 크기의 벌레다. 나무의 수분 통로를 막아 감염된 소나무는 녹색 솔잎이 갈색으로 변한 뒤 결국 고사(枯死)한다. 번식력이 강해 재선충 한 쌍이 20일 뒤엔 20만마리 이상으로 불어난다고 한다.

치료약이 없어 감염되면 100% 고사한다. 재선충은 주로 솔수염하늘소를 타고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닌다. 이 때문에 감염된 소나무가 있으면 그 일대 숲의 소나무를 전부 베어 내고 솔수염하늘소와 애벌레를 박멸해야 한다. 한혜림 국립산림과학원 산림병해충연구과장은 “2004년 제주도에서 소나무 12그루가 재선충병에 걸렸는데 그 숫자가 10년 만에 4만5800배인 55만그루로 늘어난 적이 있다”며 “감염된 소나무를 완전히 제거해야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20일 오후 경북 안동시 임동면 망천리 일대 야산이 소나무 재선충병 확산으로 인해 나무들이 붉게 말라 죽어 있다. /신현종 기자

재선충병은 1988년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일본에서 수입한 원목을 통해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경남 밀양, 경북 구미·포항·경주 등으로 확산해 2014년엔 218만그루가 고사했다.

그래픽=양진경

정부와 지자체가 방제 작업에 나서 확산세가 꺾이는 듯했지만 최근 다시 번지고 있다. 경북 지역의 피해가 가장 크다. 경북도에 따르면, 작년 5월부터 지난 14일까지 경북 지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소나무는 85만그루로 잠정 집계됐다. 지난해(39만9000그루)의 2배가 넘는다. 역대 최대다. 지난해 전국에서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89만9000그루였는데 엇비슷한 수준이다.

재선충병이 확산하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솔수염하늘소는 보통 5월이 되면 성충이 되는데 날이 따뜻해지며 그 시기가 5~11일 정도 당겨졌다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2020년 9.8도였던 전국 2~5월 평균 기온은 지난해 10.9도로 상승했다. 2023년 이후 예산 부족 등 문제로 감염된 소나무를 100% 베어내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재선충병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수종 전환’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소나무만 있는 산에 다양한 나무를 섞어 심거나 재선충병에 걸리지 않는 참나무 등을 심자는 것이다. 이주형 영남대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재선충병을 먼저 겪은 일본에선 이미 산에서 소나무를 찾아보기 어렵다”며 “지금 같은 추세라면 우리나라도 50년 뒤에는 비슷한 상황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