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050년 탄소 중립 계획 수립에 일반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며 구성한 ‘탄소중립시민회의’가 졸속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민회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탄소 중립 관련 교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커리큘럼 상당수가 부실하게 짜인 것으로 나타났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직접 다룬 수업은 단 한 차례뿐이었으며 나머지는 과거에 촬영된 강연이나 다큐멘터리 영상 일색이었다. 대통령 직속 탄소중립위원회는 “무작위로 선정한 15세 이상 시민참여단이 한 달여간 탄소 중립에 관해 집중적으로 배우고 숙의(熟議)한 결과를 반영해 10월 말 확정할 탄소 중립 시나리오 최종안에 반영하겠다”면서 지난달 7일 참여단을 출범시켰다. 현재 530명이 활동 중이다.

◇기존 강연 영상과 다큐멘터리 일색 수업

3일 본지가 국민의힘 윤두현 의원에게서 입수한 ‘탄소중립시민회의’ 자료에 따르면, 시민참여단은 8월 9일부터 이달 5일까지 28일간 온라인으로 탄소 중립 관련 ‘일반 과정’ ‘심화 과정’ 등을 밟고 11~12일 토론회를 가진다. 교육 과정은 전부 동영상 학습이며, 교육시간은 총 5시간 47분이다. 산술적으로 하루에 12분40초씩 강의를 듣고 정부가 낸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에 대한 의견을 내는 셈이다.

총 9개로 이루어진 커리큘럼을 살펴보면, 탄소 중립 시나리오 초안과 직접 관련된 수업은 한 차례에 불과했다.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유일하게 다룬 ‘시민탄소교실’은 지난달 28일 실시간 강의로 열렸다. 강사진은 총 8명으로, 이 중 6명이 탄소중립위원, 나머지 2명은 정부 산하기관인 에너지기술평가원과 국립산림과학원 소속이었다. 정부 시나리오의 문제점을 짚거나 비판할 전문가가 없었던 셈이다. 탄중위는 그동안 민간 위원 상당수가 친정부 성향의 시민단체나 국책연구소 출신인 데다 원자력을 포함해 민간 에너지 전문가는 한 명도 없어 편향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 수업을 제외한 나머지 커리큘럼은 탄소 중립의 개념과 당위를 설명하는 각종 과거 강연과 다큐멘터리, 정부기관 홍보 영상이었다. 지난 4월 한 유튜브 채널에 각각 출연한 윤순진 탄소중립위원장(15분)과 방송인 타일러 라쉬(23분)의 강연, 조명래 전 환경부 장관의 작년 12월 정책홍보 특강(15분)을 비롯해 YTN사이언스 다큐멘터리(44분), 정부 산하 KTV 다큐멘터리(28분), 정부 출연기관인 녹색기술센터 홍보 영상(12분) 등으로 구성됐다.

시민참여단 프로그램과 관련, 콘텐츠가 부실한 데다 정부 입장을 옹호하는 방향으로 치우쳐 균형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탄중위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프로그램 구성에 한계가 많았다”고 했다.

◇일반에게는 비공개 논란

탄중위는 참여단에게 탄소 중립 관련 내용을 담은 사전 자료집을 배부했는데, 이 자료를 일반에게는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탄중위는 “각 연구기관 등에서 출간을 앞둔 저작물을 엮은 것”이라며 “탄중위가 임의로 자료를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윤두현 의원은 “대부분 국민은 자료조차 못 보는데 논의 결과를 어떻게 신뢰하고 수용할 수 있겠느냐”며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폭넓은 의견 수렴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참여단에 남은 일정은 11~12일 열리는 ‘시민대토론회’다. 10명씩 53개 그룹을 짜 화상토론을 할 예정이다. 탄중위 측은 “현재 발표된 정부 시나리오 1~3안 중 하나를 단순히 고르는 수준은 아니고, 자유롭게 의견을 모아볼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을 시나리오 최종안에 어떻게 반영할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했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학과 교수는 “탄소 중립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광범위하고 갈등 양상도 복잡한데, 정부가 선정한 쟁점과 정보만 시민참여단에 제공하면 판단이 한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각계 부담을 고려해 수단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의견은 또다시 배제되고 마치 국민 전체의 의견인 것처럼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