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보(洑) 수문만 닫으면 해결될 일을, 왜 땅이 다 메마르고 나서야 양수기 설치해준다면서 세금을 쓰는 겁니까?”
지난 9일 오후 대구 달성군 현풍읍. 농사꾼 현중환(58)씨가 물기 하나 없이 메마른 땅에 발을 구르자 뿌연 먼지가 피어올랐다. 그에게 매년 2월은 마늘·양파 파종을 하는 때지만, 환경부가 낙동강 보 수문을 열기 시작한 2018년 이후부턴 수문이 다시 닫히고 물이 차오를 때까지 일을 시작하지 못한다. 유독 비가 적게 내렸던 작년에는 10월쯤부터 환경부에 “겨울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뭄 피해가 극심해진다. 낙동강 보 문을 열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됐다. 현씨는 “정부가 뒤늦게 임시 양수기를 설치해준다는데 굳이 세금을 써가면서 농민들에게 고통 주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환경부는 2018년부터 겨울철마다 보 개방에 따른 수질·수생태계 분석 등을 이유로 ‘4대강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보 개방으로 수위가 낮아져 농업 용수가 부족해진 농민들은 그때마다 고통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밭 작물을 심기 시작하는 2월마다 보 문이 닫히고 수위가 높아지기만을 기다리는 일이 5년간 반복되는 것이다. 강수량이 유독 적었던 2020년에만 “보 수위를 조기 회복시켜달라”는 농민 요청에 따라 예정보다 3주가량 앞당긴 이듬해 1월 말 수문이 닫혔다. 올해는 지난 2일 수문을 닫기로 했다가, “모니터링 활동 중 합천창녕보 상·하류에서 멸종위기종인 흰꼬리수리 등이 발견됐다”며 지난 10일까지 일주일가량 수문 개방 기간을 오히려 연장했다. 농민들은 “환경부가 지역 농민들에겐 귀 닫고 ‘보 개방이 친환경’이라는 환경 단체 말만 듣는다”고 말한다.
올겨울 가뭄은 50년 만에 최악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강수량은 평년 강수량(26.2㎜)의 10%에 불과한 2.6㎜로, 1973년 이후 1월 강수량으로는 최저였다. 이런 심각한 물 부족 상황에서 또 보 수문을 열어 원성이 커지자 환경부는 2000만원을 들여 임시 양수기를 설치했다. 낙동강에서 물을 전기로 끌어와 대구 달성군 일대에 농업 용수를 공급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용수로 쓸 만큼 충분한 양을 제때 끌어오기 어렵고, 달성군에서 나는 마늘의 80%가 재배되는 원교리 등은 아예 지원 대상에서 빠지기도 했다.
원교리에서 마늘 농사를 짓는 김성철(55)씨는 “이번 겨울 이곳에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아 물 부족 사태는 예견된 일”이라며 “특히 2월은 작물이 막 자라기 시작하는 생육기라 물을 못 대주면 수확량 차이가 큰데 이대로면 엄청 손해를 볼 것 같다. 임시로 양수기를 설치한다고 해도 전체 농가가 지원받지 못해 답답한 상황”이라고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현재 물 부족을 호소하는 농가들을 위해 10인치짜리 대형 양수기 3대를 설치했다”며 “보 수문 개방 연장도 주민들과 협의를 거쳤다”고 했다. 보 개방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민들 사이에선 “환경부가 협의했다고 하는 농민 단체엔 보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은 소속돼있지 않다”고 했다.
박석순 이화여대 교수는 “보 개설의 목적은 농가의 가뭄 피해를 줄이고, 홍수로 인한 물난리 방지 등 재래식 하천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 것”이라며 “현 정부가 보의 기능은 무시하고 과거 정부가 벌인 사업은 무조건 반대하는 식으로 수문을 열어버리니 정작 그 피해가 농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