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20년 말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서 투명 페트병의 라벨을 제거한 뒤 배출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그 전후로 기업들은 ‘분리가 잘 되는 친환경’이라며 페트병에 ‘절취선 라벨’을 붙인 제품들을 잇따라 내놨다. 제품 이름·성분 등을 적은 라벨을 뜯어낼 수 있는 부분을 점선 등으로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절취선 라벨이 잘 뜯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데다, 라벨이 붙은 채로 버려지는 경우 이전보다 오히려 분류가 더 어려워 재활용 업계에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재활용 업계에선 “사실상 ‘무늬만 친환경’”이란 지적이 나온다.
기자는 지난달 말 경기도 일대 페트병 재활용 공장 2곳에서 전체 재활용 작업 과정을 지켜봤다. 라벨이 안 떨어진 페트병이 전체의 80~90%는 돼 보였다. 이 때문에 재활용 업체들은 페트병을 1차적으로 갈퀴가 달린 대형 장비에 넣어 병에 붙어 있는 라벨을 긁어내는 작업을 한다. 그 뒤 크기 1㎝ 이하로 잘게 조각낸 후 병뚜껑과 라벨 등 이물질을 거르고 플라스틱만 남기는 분류 작업을 벌인다. 이 과정에서 얻는 작은 플라스틱 조각인 ‘페트 플레이크’는 의류 생산 등에 쓰인다.
재활용 업체는 1㎝ 이하로 자른 페트병과 라벨 조각을 대형 수조에 넣은 후 물에 떠오르는 것들을 건져내는 방식으로 이물질을 가려낸다. 하지만 대부분 절취선 라벨은 물보다 비중(比重)이 커서 이때 바닥에 가라앉아 버린다. 절취선 라벨은 병에 라벨을 접착제로 붙이는 대신, 라벨을 병에 휘감은 후 압축을 해 표면에 밀착시키는 방식을 쓰는데, 이 과정에서 잘 찢어지지 않는 PET라는 소재를 쓰기 때문이다. 기존 접착식 라벨은 대부분 비닐과 유사한 PP라는 소재를 사용해 물에 떠오르기 때문에 분류가 오히려 더 쉽다고 한다.
실제 김포시 한 공장에서는 5000L 크기의 대형 수조에 1시간마다 2~3t 분량의 페트병과 라벨 조각들을 쏟아넣었다. 하지만 물 위로 떠오르는 라벨은 이 중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이 공장 권두영(50) 대표는 “절취선 라벨 탓에 추가로 또 분류·제거 작업을 해야 해 인력, 시간,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현실적으로 재활용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부족한 채 생산자 관점에서만 제품을 만든 결과”라고 했다.
접착제를 쓴 라벨보다 절취선 라벨이 잘 뜯어지는 것도 아니다. 본지가 지난해 1년간 한 편의점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많이 팔린 페트병 30개를 조사해보니, 13개가 ‘절취선 라벨’을 쓰는 제품이었다. 이 중 ‘블랙보리’와 ‘트레비레몬’은 라벨이 절취선대로 10초 이내로 쉽게 뜯겼지만, 파워에이드·하늘보리·레쓰비라떼 등 나머지는 20초 이상이 걸렸다. 절취선대로 잘 뜯어지지도 않고, 절취선이 수차례 끊겨서 힘을 세게 줘야만 했다.
페트병 재활용의 핵심은 순수한 플라스틱 조각만 남기고 라벨이나 병뚜껑 등 이물질을 얼마나 제거하느냐다. 하지만 분류가 어렵고 잘 뜯어지지 않는 절취선 라벨이 뒤섞이면서 혼선만 커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김포시의 한 재활용 업체 맹성호(64) 대표는 “매달 1500~2000t의 페트병이 재활용 처리를 위해 들어오는데, 이 중 100~140t가량은 라벨이 잘 떨어지지 않거나 분류가 잘 안 돼 재활용을 하지 못한다”고 했다.
소비자가 쉽게 떼낼 수 있고 재활용 과정에서 분류가 쉬운 라벨을 도입해야 하지만 기업들은 “비용이 든다”고 난색이다. 한 음료 회사 관계자는 “라벨 소재나 디자인 등을 바꾸려면 제품을 만드는 기계 설비 등까지 바꿔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배재근 서울과학기술대학교 환경공학과 교수는 “기업들이 ‘보여주기식 친환경’이란 비판을 면하려면 실제 재활용이 어떻게 이뤄지는지까지 감안해 제품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