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남노는 2일 오전까지 대만 타이베이 남동쪽 420㎞ 해상에서 ‘매우 강(최대 풍속 초속 44m 이상·54m 미만)’ 상태로 천천히 이동하다 우리나라 쪽으로 북상하면서 세력을 키우고 있다. 해수면 온도가 29도 안팎에 이르는 뜨거운 바다를 통과하면서 다량의 수증기를 머금은 데다 인도 쪽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공기를 통해 열에너지까지 공급받으면서 강력해지고 있다.
기상청은 힌남노가 4일 오후 3시 태풍 강도 5단계 중 가장 센 ‘초강력(최대 풍속 초속 54m 이상)’ 상태에서 타이베이 북동쪽 290㎞까지 접근한다고 예측하고 있다. 제주에서 보면 남서쪽이다. 다음 경로는 5일 오후 3시 제주 서귀포시 남남서쪽 350㎞ 해상. 약간 약해져 ‘매우 강’까지 내려가나 여전히 위협적이다. 이때부터 6일까지가 우리나라 태풍 피해 고비다. 6일에는 한 단계 더 내려가 ‘강’ 상태에서 오후 3시 부산 북동쪽 180㎞ 인근 해상으로 이동하고 빠르게 동진(東進), 한반도를 벗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센 위력을 갖고 상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태풍은 바람 세기에 따라 ‘초강력’ ‘매우 강’ ‘강’(33m 이상 44m 미만), ‘중’(25m 이상 33m 미만) ‘보통’(17m 이상 33m 미만)으로 분류하며 ‘초강력’일 때는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다. ‘매우 강’에선 사람이나 돌이 날아가며, ‘강’인 상태는 기차 탈선, ‘중’은 지붕을 날리기도 한다.
문제는 힌남노가 다소 비정상적인 경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원래 힌남노가 대한해협을 지날 것이라 했다가 이날 국내 상륙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보통 태풍이 우리나라 쪽에 오면 북동진을 하는데 힌남노는 서쪽으로 오다가 다시 대만 쪽으로 내려간 뒤 북서진을 한다”면서 “힌남노는 기상관측 이후 뜨거운 아열대 바다가 아닌 곳에서 강력한 태풍으로 발달한 첫 사례”라고 설명했다.
주변 각국 예보 모델에서 힌남노 이동 경로는 약간씩 차이를 보인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상륙할 것이란 부분에선 의견이 일치한다. 기상청이 “상륙을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한 이유다. 중국·홍콩은 힌남노가 제주 서쪽을 통과할 것으로 봤다. 이 경우 제주가 태풍 위험반원(태풍과 주변 풍향이 일치해 풍속이 합쳐지는 구역. 태풍의 오른쪽)에 들어 피해가 급격히 커질 수 있다. 미국은 힌남노가 부산을 스쳐갈 것으로 예상했다.
지금까지 예보 모델을 통해 측정한 국내 상륙 시 힌남노 중심기압은 950hPa(헥토파스칼), 최대 풍속은 초속 43m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외부와 기압 차가 커져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세게 부는 등 세력이 강하다. 예측대로라면 힌남노는 과거 각각 부산·통영에 상륙했던 ‘사라’(951.5hPa)나 ‘매미’(954hPa)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2~4일 예상 강수량은 제주 100~250㎜(많은 곳 350㎜ 이상), 전남 남해안과 경남 해안 50~150㎜, 경북남부·경남내륙·전남·수도권·서해5도 20~70㎜, 강원영동·경북북부와 충청·전북·울릉도·강원영서 10~50㎜다. 이후 5~6일엔 우리나라 전역이 태풍 영향권에 들면서 비바람이 몰아칠 전망이다. 힌남노 폭풍 반경(초속 25m 이상 바람이 부는 구역)은 160~180㎞, 강풍 반경(초속 15m 이상 구역)은 400~420㎞에 달해 중부지방 북부 일부를 제외한 전국을 덮는다. 경기 남부·충청·남부 지방·제주에 비가 많이 퍼붓겠고, 수도권과 강원도 강하게 발달한 비구름대 영향권에 들겠다.
변수는 ‘태풍 강도가 줄지 않고 커지느냐’와 주변을 둘러싼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 여파다. 강도가 예측보다 강한 상태로 들어오면 경로는 더 서쪽으로 움직일 수 있다. 또 일본 쪽에 있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확장하면서 힌남노를 밀거나 중국 쪽에 있는 건조한 공기가 티베트 고기압 가장자리를 타고 내려오면서 힌남노 북상을 저지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경로가 예상보다 서쪽으로 나갈 수 있다. 이러면 강풍 반경이 더 넓어지고 경기 남부 등까지 피해가 확산할 수 있다.
힌남노가 전국에 얼마나 비를 뿌릴지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다만 힌남노의 현재 경로와 비슷하게 이동했던 태풍 ‘차바’(2016년)는 그해 10월 4~5일 이틀간 제주에 100~600㎜, 영남 50~380㎜, 호남 30~200㎜, 서울 등 중부지방은 5~40㎜ 강수량을 기록했다. 힌남노는 5~6일에서 길게는 7일까지 연속으로 비를 내리게 할 것으로 보여 차바보단 강수량이 많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2003년 태풍 매미 때는 사라 이후 44년 만에 역대급 태풍이 찾아오다 보니 미처 준비가 덜 된 곳이 많아 사망·실종 등 인명 피해 132명, 이재민 6만1000여 명이 생겼다. 일 최대 풍속이 초속 51.1m를 기록할 정도로 강풍이 불면서 전국에 전신주와 철탑이 쓰러지는 일이 속출했고, 145만 가구가 정전 피해를 당했다. 고층 건물 유리창이 깨지고 바람에 뽑힌 가로수가 도로 위를 나뒹굴었다. 기상청은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강도라 예상치 못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으니 긴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환경부는 힌남노 북상에 대비해 현재 전국 20개 다목적댐에 약 55억2000만t 홍수 조절 용량을 확보한 상황이다. 유역 면적 대비 저수 용량이 적은 남강댐은 2일 오후 2시부터 남강 본류로 초당 300t, 가화천으로 초당 100t 수문을 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