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공항에 설치된 대형 콘크리트 둔덕 - 31일 오후 전남 여수공항 남쪽 활주로에서 수십m 떨어진 농로(農路)에서 바라본 착륙 유도 장치(로컬라이저) 구조물. 높이 4m가 훌쩍 넘어 보이는 대형 둔덕은 안쪽에 콘크리트 구조물을 심은 다음 흙으로 덮어 만든 것이다. 둔덕 위 안테나 같은 시설이 착륙 유도 장치다. /진창일 기자

31일 오후 전남 여수공항 남쪽 외벽 밖의 농로(農路). 외벽 안쪽을 바라보니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장치)가 설치된 거대한 둔덕이 보였다. 얼핏 보기에도 높이가 4m가 넘어 보이는 대형 둔덕이었다. 이 둔덕은 여수공항 남쪽 활주로 끝에 설치된 것으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이 둔덕 아래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이 매립돼 있다. 활주로와 로컬라이저 사이 거리도 짧았다. 국토부 관계자는 “여수공항의 활주로 끝에서 로컬라이저까지 거리는 300m 미만”이라고 했다. 비행기가 착륙하다가 활주로를 벗어난다면 둔덕에 부딪혀 대형 사고가 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9일 179명이 사망한 사고가 일어난 무안공항과 판박이인 상황이다.

그래픽=양진경

참사가 일어난 무안공항에는 활주로 끝에서 264m 떨어진 곳에 가로 40m, 높이 2m, 두께 4m 정도의 둔덕이 있다. 이 둔덕 안엔 기둥 모양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고, 그 위에 2m 높이의 로컬라이저가 설치돼 있다. 사고 당시 동체착륙을 한 항공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이 구조물과 정면충돌했다. 이 충돌로 항공기는 폭발하며 산산조각 났고, 60m 떨어진 공항 외벽까지 깨뜨렸다. 충돌 당시 기체에 가해진 충격은 수천t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문가들은 “이 구조물이 활주로에서 가깝고, 단단하고, 높기까지 해서 사고 규모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이런 ‘위험한 구조물’이 여수를 포함한 전국 공항 곳곳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공항공사 관계자는 여수공항 둔덕에 대해 “지반이 불안정해 로컬라이저 위치가 흔들릴까봐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었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광주공항도 상황이 비슷하다. 약 1.5m의 둔덕 위에 로컬라이저가 설치돼 있는데 이 안엔 콘크리트 구조물이 묻혀 있다.

포항경주공항도 마찬가지다. 약 2m 높이 둔덕 위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박혀있고, 그 위로 로컬라이저가 있다. 이런 구조물로 인해 과거 사고도 있었다. 1999년 3월 15일 김포공항을 출발한 대한항공 여객기 KE1533편이 착륙하다가 활주로를 이탈해 로컬라이저 구조물과 충돌한 뒤 공항 외곽 언덕에 멈췄다. 당시 비행기 동체가 파손됐지만 바퀴를 이용해 착륙해 사망자는 없었다.

국토부는 지난 30일 브리핑에서 무안공항 로컬라이저의 콘크리트 구조물 때문에 대형 사고가 났다는 질문에 “다른 공항에도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다”고 밝혔다.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설명을 한 것이다. 하지만 되레 이 공항들이 ‘제2, 제3의 무안공항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방 공항들 중에는 활주로에서 로컬라이저까지 거리가 무안공항(264m)보다는 길지만 국내외 권고 기준(300m)보다 짧은 곳도 많다. 공항 시설 관련 규정에 따르면 로컬라이저는 활주로 끝에서 300m 이상 떨어진 지점에 설치해야 한다. 단 지형 여건에 따라 위치를 조정할 수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제주공항 등 여러 공항에 설치된 로컬라이저도 활주로와의 거리가 300m 이내”라고 했다.

지방 공항 14곳 중에서 사고 예방을 위한 EMAS(항공기 이탈 방지 시스템)를 설치한 곳은 없다. EMAS는 바닥에 쉽게 부서지는 물질을 깔아서 활주로를 벗어난 항공기의 속도를 줄일 수 있는 장치다. 미 연방항공국(FAA)은 상업용 공항은 활주로 끝으로부터 300m 이상 안전 구역을 확보하지 못하면 EMAS를 설치하도록 하고 있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교수는 “로컬라이저 구조물은 부서지기 쉬워야 한다는 규정이 명확히 있기 때문에 무안공항을 포함해서 규정에 어긋나는 구조물은 빠른 시일 내에 다 바꿔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또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로컬라이저(착륙 유도 시설)

공항 활주로 주변에 설치하는 안테나 모양의 시설. 전파를 쏴 항공기가 활주로 가운데 착륙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덕분에 악천후에도 항공기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 방위각 지시 장치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