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무안 제주항공 사고 이후 콘크리트 둔덕 설치 등 무안공항의 안전 관리 소홀과 인프라 미비, 운영 노하우 부족 등의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전국 곳곳의 지방공항도 무안공항처럼 안전 관련 상황이 열악한 곳이 많다. 그런데도 여러 지방 공항이 신규 노선을 공격적으로 유치하고, 국제공항 승격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안전 환경에도 ‘몸집 불리기’에만 열중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고가 난 제주항공 무안~방콕(태국) 노선은 지난달 8일부터 운항을 시작한 신규 노선이다. 이 공항에선 지난달 방콕·타이베이·나리타·오사카 등으로 하늘길을 넓혔다. 이는 전남도와 지역 국회의원이 함께 추진했던 ‘무안공항 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외국인 관광객과 기업이 무안공항으로 유입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무안이 지역구인 서삼석 민주당 의원은 “정부는 항공사업자에게 추가적인 재정 지원 인센티브를 마련하는 등 무안공항 국제선 유치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항공업계에서는 공항 인프라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정기 국제선을 밀어붙였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무안공항은 조류 퇴치 인력 부족, 규정을 위반한 콘크리트 둔덕 형태의 로컬라이저 구조물 설치 등 안전시설 관리도 부실했다.
상당수 다른 지방 공항도 무안공항과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다. 인프라가 열악해 이용객 불편이 커지며 이용객이 줄어들고, 다시 적자에 시달리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 이러다 보니 항행 관련 안전 시설이나 인력도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지역과 공항을 살리겠다”며 국제선 등 신규 노선 취항에는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국제공항인 강원 양양공항(2023년 말 기준)은 국내 공항 중 유일하게 관제레이더가 없다. 관제레이더는 전파를 쏴서 상공에 있는 비행기의 위치·거리·종류 등을 파악하는 설비다. 이 외에도 지상에 있는 비행기나 작업차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지상감시레이더, 항공기 착륙 시 정밀한 유도를 제공하는 정밀접근레이더도 없다. 관련 안전 시설(항행안전무선시설)은 계기착륙시설(ILS) 등 3개뿐이라 제주(7개), 여수(4개) 등에 비해 적었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는 이 같은 레이더 사용을 권장하고 있고, 국내외 주요 국제공항도 이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레이더 탐지 범위가 넓기 때문에 공항에 따로 설치를 안 해도 공항 주변 다른 레이더에서 자료를 공유받을 수 있다”며 “필요가 없는데 굳이 설치하면 도리어 돈낭비 지적이 나올 수 있다”고 했다. 양양공항은 지난해 1만6538명만 이용했고, 매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인근 다른 공항도 마찬가지다. 울산공항은 활주로 길이가 국내 공항 중 가장 짧은 2km다. 이 때문에 180석 이하 기종으로만 노선을 취항할 수 있는 등 제약이 많다. 울산시는 올 10월 열리는 울산공업축제에 대비해 부정기 국제 노선 취항을 추진 중이다. 중국 광저우·허난성·지린성 창춘과 일본 니가타·시모노세키 등이 유력한 후보 지역으로 거론된다.
지난해 1~11월 이용객(11만347명)이 전체 공항 이용객의 0.1%에 불과한 경남 사천공항에 대해선 국제공항 승격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국제공항이 되려면 정기 국제선 항공편 취항 외에도 출입국심사·세관·검역 인프라 등을 갖춰야 한다. 강원 원주시도 원주공항을 국제공항으로 승격한다는 내용을 2026년부터 시행되는 ‘제7차 공항개발 종합계획’에 반영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만, 항공기 얼음을 제거하는 제빙처리장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는 등 인프라가 부족해 시설 보완 및 안전관리가 우선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역 활성화와 만성 적자 탈출 등을 위해 지방 공항을 활성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선 수나 외적 규모를 늘리기 전에 내실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교수는 “최근 지방 공항들이 노선을 확대하려고 하는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안전 관련 내용을 전면 재검토해 규정, 시설, 인력 상황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