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무안공항에서 충돌 사고가 발생한 제주항공 사고기의 양쪽 엔진에서 철새인 가창오리의 깃털과 혈흔이 발견됐다는 국토부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사고기 블랙박스엔 이례적으로 마지막 4분간의 기록이 저장되지 않았는데, 엔진 2개가 모두 손상돼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이번 사고를 조사하는 국토교통부 항공·철도 사고 조사 위원회(사조위)는 25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 대한 첫 현장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사고기는 지난달 29일 오전 8시 54분 무안공항 관제탑과 교신을 시작해 착륙 허가를 받았다. 오전 8시 57분 무안공항 관제탑은 사고기에게 조류 충돌을 경고했고, 조종사들은 오전 8시 58분 11초에 ‘항공기 아래쪽에 조류가 있다’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나타났다.
곧이어 오전 8시 58분 50초부터 블랙박스의 비행 기록 장치(FDR)와 음성 기록 장치(CVR)의 기록이 동시에 중단됐다. FDR은 항공기의 속도·고도·엔진 상태 등 비행 데이터를, CVR은 조종실 내 대화 등 음향 정보를 기록하는 장치다. 본지 보도를 통해 알려진 대로 사고기 블랙박스엔 조종사의 메이데이 선언이 담기지 않은 것이다.
착륙 과정에 있던 조종사들은 착륙을 포기하고 고도와 속도를 높여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복행’을 시작했고, 곧이어 오전 8시 58분 56초 ‘메이데이’를 선언했다. 블랙박스 기록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이는 사조위가 관제 기록을 통해 추정한 시간이다. 이후 사고기는 약 4분간 활주로 좌측 상공을 비행하다가 랜딩 기어를 펼치지 못한 채 처음 착륙을 시도했던 방향 반대로 동체 착륙을 했다. 이어 항공기는 오전 9시 2분 57초에 활주로 바깥에 있는 로컬라이저(방위각 시설) 콘크리트 둔덕과 충돌했다.
사고기 양쪽 엔진에선 ‘가창오리’의 깃털과 혈흔이 발견된 것으로 조사됐다. 가창오리는 몸길이 약 40㎝, 날개 길이는 21㎝의 겨울 철새다. 주로 시베리아 동부에서 번식해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사고 발생 하루 이틀 전까지 수만 마리 규모의 가창오리 떼가 무안공항 인근에서 비행하는 모습이 목격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조위는 공항 감시 카메라(CCTV) 영상 분석을 통해 복행 중 사고기가 조류와 접촉하는 장면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다만 가창오리 외에도 다른 새들이 사고기와 부딪혔는지, 총 몇 마리와 충돌했는지 등에 대해선 추가 검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항공기 엔진 2개가 모두 손상돼 전기 계통에 문제가 생겼고, 이 때문에 블랙박스에 정보를 보내는 송신 기능 역시 마비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보통 항공기에는 2개의 주력 엔진과 보조 동력 장치인 ‘APU’가 있다. 하지만 급박한 상황 속에서 APU를 작동시키지 못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사고기는 블랙박스뿐 아니라 ADS-B(항공기 위치 탐지 시스템) 등 다른 장치도 비슷한 시간에 모두 작동이 멈췄다. 주력 엔진과 APU 모두 작동하지 않았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조사 결과는 사고기 엔진을 비롯한 주요 부품 및 운항·정비 자료 등을 토대로 작성됐다. 사고 원인을 밝힐 핵심 자료인 사고기 블랙박스와 관제탑과의 교신 기록에 대해 사조위는 “세부 분석과 검증에 추가적으로 수개월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조위는 이번 사고의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 무안공항 내 로컬라이저 둔덕에 대해서도 국내 기관에 별도 용역을 의뢰해 추가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무안공항 인근 조류 활동이 사고에 미친 영향도 함께 조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