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1시간 16분 만에 진화 - 지난 28일 부산 김해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홍콩행 에어부산 여객기에서 불이 난 모습. 이 여객기는 오후 9시 55분 이륙할 예정이었지만, 앞선 비행기들의 지연으로 20분가량 주기장에 머물렀다. 여객기에 타고 있던 승객·승무원 176명은 전원 탈출했다. /소셜미디어

설을 하루 앞둔 지난 28일 부산 김해공항 주기장에 대기 중이던 홍콩행 에어부산 여객기(BX391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탑승 중이던 승객과 승무원 176명은 불길이 기내를 완전히 덮기 전 모두 비상 탈출해 인명 피해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여객기는 천장 대부분이 불에 타며 반소(半燒)됐다.

당초 이 여객기는 오후 9시 55분 이륙할 예정이었지만 앞선 비행기들이 지연되며 20분가량 주기장에 머물렀다. 정시에 이륙한 후 화재가 발생했다면 지난달 발생한 무안공항 사고와 맞먹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사고 여객기에 화재가 발생한 건 28일 오후 10시 15분쯤이다. 여객기 뒤쪽에서 ‘불이야’란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가 나기 시작했고 이후 앞쪽으로 불이 번지며 1시간 16분가량 이어졌다.

실제 승객들은 “당시 ‘타닥타닥’ 뭔가 타는 듯한 소리가 났다”며 “뒤쪽 선반 위에서 불이 시작된 것 같다”는 진술을 내놓고 있다. 한 승객이 촬영한 기내 사진에는 여객기 뒤쪽인 29~30열 승객 좌석 위 짐을 싣는 선반 내에서 불꽃이 일어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기내 선반 위 상부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승객 짐 등 가연성 물질로 연속해 옮겨붙으며 불이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지난 28일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에서 이륙을 준비하던 에어부산 항공기에 불이 나 기체가 반소(半燒)했다. 합동 감식단 관계자들이 30일 불에 탄 기체를 살펴보고 있다.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현재 최초 발화 물질은 파악되지 않았지만 일각에선 보조 배터리나 배터리를 단 전자 기기라는 추정이 제기된다. 실제 지난해 12월 부산 김해공항 활주로에서 이륙을 위해 이동하던 에어부산 항공기 내부에서 보조 배터리에서 연기가 발생한 사건이 있었고, 지난해 4월과 7월에도 아시아나항공, 이스타항공 여객기에서 비슷한 사고가 벌어졌다.

승무원들이 화재를 인지한 후 질소 소화기로 불을 끄려 했지만 실패한 것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배터리 등으로 인한 화재는 진압이 쉽지 않은 데다 이미 승객의 짐 등 불에 탈 수 있는 물질이 많아 불이 크게 번졌다는 것이다. 항공기 내장재의 경우 난연성 소재를 사용해 화재를 지연시켜야 한다고 규정돼 있긴 하지만, 불길이 커지면 이를 막는 건 사실상 어렵다. 여기에 초속 10m로 불었던 바람까지 더해지면서 소방 당국이 펌프차, 화학차, 굴절차 등 진화 장비 68대를 동원했음에도 최종 진화는 1시간 16분이 지난 오후 11시 31분 이뤄졌다.

그래픽=백형선

비상 탈출 과정도 매우 긴박하게 이뤄졌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탈출 안내 방송이 없었고 일부 승객이 짐을 챙기려 하면서 혼란이 컸다는 것이다. 한 승객은 “화재가 난 좌석 주변 승객에게 나오라고 하지도 않았고 승무원이 ‘짐 놓고 나가라’는 말도 없어 짐 챙기는 승객과 탈출하려는 승객으로 아수라장이었다”고 했다. 사고 여객기엔 비상문이 8개 있었고 이 중 7개가 열렸는데 일부는 승객들이 열었다고 한다. 승객들이 문을 연 시점이 승무원의 지시를 받은 후였는지 등은 확인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에어부산 측은 “안내 방송을 할 물리적 시간이 없었고, 문은 비상 탈출 선언에 따라 탑승구 좌석에 앉은 승객들이 연 것”이라며 “매뉴얼대로 짐을 놓고 탈출하라는 안내도 이뤄졌다”고 했다.

항공법은 비상 탈출 과정을 기장과 승무원의 지시에 따르도록 규정한다. 비상 탈출을 위해 문을 열고 비상 슬라이드를 펼치려면 엔진을 끄는 사전 작업 등이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엔진을 끄지 않은 채 문을 열면 엔진에 사람이 빨려 들어갈 위험이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경찰 등은 앞으로 화재 원인을 찾는 합동 감식과 수하물 반입 규정 준수, 비상 탈출 과정 위법 여부 등을 따지는 조사에 나선다. 다만 감식은 2차 사고를 막기 위해 항공유 제거 작업 등이 필요한 지 따져야 해 2월 초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