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을 중심으로 메마름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으면서 산불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24일에는 강풍까지 예고돼 영남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산불이 바람을 타고 더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 전국에 강한 봄비가 예고된 27일 전까지는 동해안 일대의 건조도가 최고조에 달할 것으로 보여, 이 사흘이 산불 확산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3일 기상청에 따르면, 경북 전역과 강원·충청·영남·제주 곳곳에 건조특보가 발효됐다. 경북 경산·영덕·울진·포항·경주와 대구에는 건조경보, 나머지 지역은 건조주의보가 각각 내려졌다. 건조특보는 나무 등의 메마른 정도를 나타내는 ‘실효습도’가 낮을 때 발령된다. 보통 실효습도가 50% 이하면 큰불이 나기 쉬운 상태로 보는데, 이 수치가 건조주의보는 35% 이하, 건조경보는 25% 이하까지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대기 자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할 준비가 된 셈이다.
봄철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으며 고온 건조해진 서풍(西風)에 강풍까지 불면서 불씨를 키우고 있다. 우리나라 북쪽으로 저기압, 남쪽으로 고기압이 각각 자리 잡은 상황에서 영남을 중심으로 마치 드라이기처럼 뜨겁고 건조한 바람이 계속 공급되고 있다.
산불이 발생한 경남 산청의 경우 23일 기준 실효습도가 35%에 불과한데, 24일에는 최대 순간풍속 초속 20m 내외의 강한 바람이 더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강풍의 기준이 되는 초속 15m의 바람은 간판이 흔들릴 정도의 세기다. 초속 17m부터는 태풍급 바람이 된다. 그런데 이보다 강한 바람이 예고된 것이다. 현재 실효습도가 낮은 경북 포항(29%)·경주(32%), 울산(28%), 강원 삼척(34%) 등도 초속 15~20m의 바람이 예상되고 있어 작은 불씨가 큰불로 이어질 수 있다.
큰 산불의 조짐은 작년 말부터 있었다. 작년 12월 13일 강원 속초·고성·양양과 경북 울진·영덕·포항에 내려진 건조특보는 43일간 이어졌다. 대륙 고기압에서 불어온 찬 북풍(北風)이 애초 건조한 바람인 데다,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으며 더 건조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봄이 되며 불어오는 따뜻한 서풍은 산맥을 넘는 공기의 양이 더 많아 동해안 지역을 더 건조하게 만든다. 통상 동해안 지역은 초겨울인 12월부터 봄의 한복판인 4월까지 일 년 중 가장 건조한 시기를 지난다.
그런데 올해는 눈까지 많이 내리지 않으며 건조도를 높였다. 지난 설 연휴 때 서해상에서 만들어진 큰 눈구름대가 한반도 전역에 많은 눈을 뿌릴 것으로 예상됐고, 이에 지난 1월 24일 이 일대 건조특보는 해제됐다. 그러나 당시 눈구름대가 태백산맥 서쪽 지역에 대부분의 눈을 뿌리면서 동해안은 갈증을 간신히 해소하는 정도에 그쳤다. 이에 일주일 만인 지난 1월 31일 강원 영동과 영남에는 다시 건조특보가 발령됐다.
이후로도 지난겨울부터 올봄까지 눈의 양상은 북쪽의 찬 공기가 따뜻한 서해상을 통과하며 눈구름대를 형성하고, 주로 한반도 서쪽에 많은 눈을 뿌리는 패턴을 이어갔다. 그나마 강원도는 이달 초부터 강한 동풍(東風)이 눈구름대를 몰고 왔고, 지난 18일 전국에 ‘3월 폭설’이 내리며 많은 눈이 쌓이게 됐다. 겨울철에 눈이 적절히 내려야 봄까지 그 눈이 천천히 녹으며 땅에 수분을 천천히 공급해 건조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영남은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기상청은 전국에 강한 봄비가 예고된 27일까지 서풍이 동해안 일대로 계속 밀려들 것으로 보고 있다. 24~26일은 건조도가 절정에 달하면서 산불 피해가 커지기 좋은 조건이 될 전망이다. 또 서풍에 중국발 미세 먼지까지 실려오면서 24일 미세 먼지 농도는 수도권과 충청·전북에서 ‘매우 나쁨’, 강원·경상·전남권에서 ‘나쁨’ 수준을 기록할 전망이다.
27일 강수량은 아직 예보되지 않았으나, 비구름대를 동반한 저기압이 제법 크게 형성돼 서해상을 통과해 한반도로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이에 동해안의 건조도가 현재보다 나아질 수 있지만, 만약 이번에도 대부분의 비를 한반도 서쪽 지역에 뿌릴 경우 동해안 지역은 잠시 비가 내린 후 금세 다시 건조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