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일대가 잿더미가 된 지난달 말 이례적으로 고온 건조한 날씨와 강풍이 산불 확산을 견인했다는 사실이 수치로 나타났다. 날씨 자체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셈이다.

그래픽=이진영

2일 기상청이 발표한 ‘3월 기후 특성’에 따르면, 지난달 말 우리나라 남쪽과 북쪽에 각각 고기압과 저기압이 자리하면서 그 사이로 따뜻한 서풍(西風)이 불어든 탓에 이례적으로 덥고, 건조하고, 강풍이 불었다.

지난달 하순(21~31일) 전국 평균기온은 10.9도로 평년(1991~2020년·30년 평균)보다 3.1도 높았다. 제주를 제외한 전국 62개 관측 지점 가운데 37곳에서 3월 일 최고기온 기록을 새로 썼을 정도로 초여름에 가까운 이상고온이 발생했다. 서풍이 계속 불어오며 드라이기를 켜놓은 듯 내륙을 데웠다. 이렇게 뜨거운 바람은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으며 ‘푄 현상’에 의해 더 고온 건조해져 영남을 비롯한 한반도 동쪽 지역을 덮었다.

강수량도 적었다. 지난달 하순 강수량은 3.3㎜로 평년(18.1㎜)보다 14.8㎜ 적었다. 날은 더운데 비가 안 내리다 보니 같은 기간 상대습도는 평년(59%)보다 6%포인트 낮은 53%를 기록했다. 대기와 땅이 말라가면서 불씨가 닿기만 해도 타오를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경북 의성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산불이 발생한 지난달 21~26일로 범위를 좁히면 이 기간 평균 기온은 14.2도로 평년보다 7.1도 높았고, 상대습도는 52%로 평년보다 7%포인트 낮았다.

불씨는 강풍을 타고 빠르게 번져갔다. 지난달 23~25일에는 남쪽 고기압과 북쪽 저기압이 예년보다 강하게 발달해 덩치를 키우며 성질이 다른 두 기압 사이가 가까워졌고, 그 사이로 좁은 바람길이 만들어졌다. 바람길이 좁아지면 압력이 커지며 바람도 강하게 분다. 25일 밤부터는 찬 북풍(北風)이 내려오면서 우리나라를 덮고 있던 따뜻한 공기와 충돌해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경북 안동에 일 최대 순간풍속 초속 27.6m, 의성에 초속 21.9m 등 역대 가장 빠른 순간풍속이 기록됐다. 태풍의 기준이 되는 바람이 초속 17m인데, 이보다 거센 바람이 분 것이다. 의성 산불은 한때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 중 가장 빠른 시속 8.2㎞의 속도로 동쪽으로 확산했다.

영남은 메말라갔지만, 중부지방에는 꽃샘추위와 함께 때아닌 ‘3월 폭설’이 쏟아지기도 했다. 지난달 눈이 내린 날은 4.4일로 평년(2.3일)보다 많았다. 내린 눈의 양도 6.8㎝로, 평년(3.8㎝)을 웃돌았다. 집계된 적설량은 많았지만, 구름대는 대부분 백두대간을 넘지 못하고 서쪽 지역에만 눈을 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