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백두대간 동쪽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모두 소나무림(林)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에 자생하는 나무 5그루 중 1그루는 소나무다. 소나무는 춥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라기에 6·25 전쟁 후 황폐해진 산림을 복원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소나무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종이었던 것은 아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엔 생장이 빠른 속성수가 주로 인공 조림됐다. 일본은 백두산 지역과 강원도·함경도의 천연림을 집중 벌채하며 질 좋은 목재 자원을 수탈했다. 전국적으로 무분별한 벌채가 이어지며 산림 황폐화가 심각해진 1920년대부터는 빠르게 벌목할 수 있는 나무를 식재하기 시작했다. 대표적 나무가 1900년대 초반 일본이 들여온 ‘리기다소나무’다. 북미가 원산지로 질긴 생명력과 재생력이 특징이다. 주 줄기가 잘리거나 불에 타도 마디에서 다시 싹을 틔울 정도로 생명력이 강해 많이 식재됐다.
이 시기 일본을 통해 들어온 ‘아까시나무’는 용산구 육군본부와 경인선(京仁線) 철도변에 처음 식재된 후 왕성한 번식력을 바탕으로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흔히 ‘가짜 아카시아’로 불리는 아까시나무는 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크고, 토양을 비옥하게 만든다. 천연림을 망가뜨린 상황에서 토질을 높여 인공 조림이 잘되도록 심은 것이다. ‘낙엽송’이라 불리며 건축재로 주로 쓰이는 일본산 ‘일본잎갈나무’도 이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일제강점기 인공 조림으로 심은 나무는 약 82억그루, 면적은 236만ha로 알려졌다.
광복 후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으로 산림 황폐화가 극에 달했다. 1960년대 들어 정부는 치산녹화(治山綠化)를 시작했다. 산림을 다시 울창하게 만들려면 번식력이 강한 수종이 필요했다. 엉망이 된 토질을 개선시켜준 건 아까시나무였다. 콩과인 아까시나무 뿌리엔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서 나무에서 질소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고, 이에 비료 없이도 생장한다. 아까시나무를 심으면 토양이 좋아지며 주변 나무들까지 덩달아 잘 자라게 된다. 번식력이 좋은 리기다소나무도 집중 식재됐다. 우리나라 수종인 소나무와 잣나무도 일부 식재됐다.
1980년대 들어선 국내 산림 사정이 안정되면서 토종 수종인 소나무와 참나무류의 복원이 시작됐다. ‘조림’에서 ‘육림’으로 정책이 전환되기도 했다. 조림이란 종자를 뿌리거나 묘목을 심어 산림을 만드는 것이고, 육림이란 산림이 경제성 있는 임목으로 꾸려지도록 손질하는 것이다. 송이를 얻을 수 있는 소나무림이 각광받았다. 일본산 ‘낙엽송’도 건축용 목재로 쓰임새가 많아 꾸준히 식재됐다.
산업화를 거치며 국민소득이 올라감에 따라 1990년대엔 환경보호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생태계 복원 목소리도 커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천이(遷移) 방식으로 산림 정책이 선진국화됐다. 천이란 숲이 산불이나 홍수, 벌채 등으로 파괴됐다가 자연적으로 식생이 복구되는 과정을 뜻한다. 자연이 스스로 회복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다. 숲이 산불이나 벌채로 민둥산이 되면 땅이 고루 햇볕을 받기 시작하면서 잠자던 종자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특히 참나무류의 생장이 빠르다. 씨를 뿌린 적 없던 신갈나무, 굴참나무 등 토종 활엽수가 파괴된 자연에서 스스로 싹을 틔우며 조명받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다.
2000년대엔 ‘도시 숲’이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수종이 다양해졌다. 소나무와 참나무류가 전체 산림의 50% 정도를 차지하는 가운데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등장했고, 백합나무도 가로수로 인기가 높아졌다. 조경이 발달하면서 일본산 편백의 식재도 늘어났다.
2010년대 이후에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탄소 중립에 기여할 수 있는 수종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미래 한반도에 가장 적합한 수종은 ‘붉가시나무’다. 상록 활엽수인 붉가시나무의 1㎥당 탄소 저장량은 0.840tC(탄소톤)으로, 바닷가를 따라 자라 해송(海松)이라 불리는 ‘곰솔’(0.473tC)의 두 배가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