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발생한 경북 산불이 청송 주왕산국립공원까지 삼키면서 일각에선 국립공원 안에도 임도(林道)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임도는 산불이 나면 소방차가 들어가 불을 끌 수 있는 숲속 길이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와 경관 보전이 목적인 국립공원에 화재 진압을 위한 임도를 낸 사례는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14일 국립공원공단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주왕산국립공원 전체 면적(1만610ha·헥타르)의 약 3분의 1인 3260ha가 불탔다. 여의도 면적(290ha)의 약 11배가 휩쓸려 간 것이다. 불탄 면적 대부분은 소나무가 있던 천연림이었다. 복원 작업은 자연 복구로 이뤄질 예정이다. 공단 관계자는 “국립공원은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심해 인공 조림은 어렵다”고 했다.
각국 주요 국립공원이 임도를 제한하는 것은 서식지를 단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소형 포유류, 양서·파충류, 곤충 등은 도로·벌채 등 인공 구조물에 민감해 생태 연결성이 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임도를 통해 외부 차량이 자주 드나들게 되면 외래 식물종이나 병원균이 들어올 가능성도 커진다.
호주 블루마운틴 국립공원은 봄철 우리나라 백두대간 동쪽처럼 고온 건조한 바람이 자주 불어 산불 위험이 큰 지역에 있다. 이곳에선 임도 대신 산불에 견디는 힘이 강한 활엽수 위주로 일종의 방화벽을 세워 산불을 대비하고 있다. 산불이 나면 소방차가 진입해 불을 끄는 속도보다 불씨가 산을 태우는 속도가 더 빠르기에 타는 면적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은 임도 대신 헬기 착륙장을 전략적으로 배치하고, 드론과 고지대 산불 감시탑, 인공지능(AI) 산불 감시 시스템을 통해 불씨가 보이면 헬기를 출동시켜 초기 진압 시간을 단축하고 있다. 스페인 피코스 데 에우로파 국립공원과 프랑스 메르캉투르 국립공원도 임도 대신 헬기를 통한 공중 진화와 드론·위성을 통한 산불 조기 감지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임도는 주로 임업을 위해 닦는 도로라서 국립공원 안에서는 원칙적으로 제한 대상이다. 국립공원 대부분이 탐방객을 위한 최소한의 길만 내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