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영남 산불을 키운 원인으로 불에 잘 타는 소나무 위주의 조림이 지목됐다. 온난화 여파로 한반도 기후는 온대에서 아열대로 변해가고, 극단적 건조와 홍수가 빈발함에도 산림 정책은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영남의 상흔은 자연 복구와 인공 조림을 병행해 지워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나무는 수십 년 후를 바라보고 심어야 하기에 산불 복원을 위한 인공 조림 시 지역별 여건을 고려해 ‘필요한 나무’를 심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18일 본지가 환경부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 산림청 ‘산림 분야 기후변화 적응 시행 계획’, 기상청 ‘2050 탄소 중립 대응 전략’ 등 정부 보고서를 종합해 기후변화에 따른 국내 생태계 변화와 현재 산림 구성의 문제, 향후 조림·수종 전략 등을 분석해보니 한반도 안에서도 지역의 지형적·기후적 특성에 따라 각기 다른 나무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나무 위주의 단순림(林)이 아니라 해당 지역만의 ‘지역림’이 필요한 것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도시 숲’의 부재로 인한 열섬 현상과 짙은 미세 먼지가 문제로 꼽힌다. 2022년 서울 동작구에 내린 시간당 141.5㎜의 집중호우처럼 홍수도 발생하고 있다. 해안가에 방풍과 모래 날림을 막을 목적으로 해안 방재림을 조성하듯 도시에는 이런 요소를 고려한 ‘도시 방재림’이 필요한 것이다. 적합한 수종으로는 느티나무, 이팝나무 등이 꼽힌다. 잎이 넓어 그늘을 제공하고, 침엽수보다 활엽수가 탄소 흡수력이 좋으며 경관 개선에도 효과가 있다.
산악 중심인 강원도는 겨울철엔 한랭 건조해 산불이 많이 발생하고, 여름철엔 집중호우가 내린다. 현재 강원도 산림은 ‘낙엽송’이라 불리는 일본잎갈나무 위주의 단순림이라 병해충과 산불에 취약하다. 이에 기존 낙엽송과 함께 졸참나무, 서어나무 등 활엽수를 심어 ‘산불 완충림’을 조성하는 것이 과제다. 굴참나무, 단풍나무 등 산불에 강한 나무들을 심어 ‘방화림 띠’를 조성할 필요가 있고, 산불이 난 후 인공 조림을 할 때는 빠르게 활착되는 물푸레나무 등을 심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상도는 산지와 평지의 중간 형태 지형인 구릉지가 발달해 있다. 옴폭 파인 지형이라서 여름철 점점 뜨거워지고 있는 남풍(南風)이 그릇 안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봄철 서풍(西風)이 백두대간을 넘으면 ‘푄 현상’에 의해 고온 건조해진다. 이 일대가 아열대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참나무시들음병, 소나무 재선충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이에 병해충 저항성 수종인 느티나무, 이팝나무, 팽나무 등을 조림해야 한다. 또 아열대 수종인 감탕나무, 남방계 수종인 동백나무 등을 미리 심어 아열대 전환을 대비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륙 중심인 충청도는 겨울 한파와 여름 폭염이 가장 극단적으로 나타나는 지역이다. 달라진 기후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기후 적응형 수종이 필요한데 대표적으로 아까시나무, 밤나무, 졸참나무 등이 있다. 이렇게 활착이 빠르고 산림 황폐화를 방지하는 수종을 혼합해 심어야만 큰 홍수에도 견딜 수 있다. 충청도는 2022년과 2023년 연이어 대규모 홍수 피해가 발생한 바 있다.
전라도는 평야와 구릉지가 대부분이라 농사에 적합한 지형을 가지고 있다. 남쪽에서 북상하는 태풍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방풍림과 하천림의 필요성이 크다. 농경지 경계 조림 형태로 팽나무, 가시나무 등 방풍 효과가 있는 수종을 심고, 하천·습지 연계 조림으로 버드나무, 느릅나무 등 습지 적응 종을 더 심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아열대 기후에 진입한 제주도는 기존 난대 수종인 동백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 등을 많이 심어 난대림을 보존하는 것이 과제로 꼽힌다. 한라산 고지대에선 한대성 수종의 감소에 대비해야 하고, 중산간 지역에는 보호림을 확대해 제주만의 색깔이 지워지지 않도록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온난화에 따라 짧은 기간 꽃가루를 많이 뿜어내는 삼나무를 대체할 활엽수도 탐색해야 할 시점이다.
임치홍 서울여대 생명환경공학과 교수는 “숲을 단조롭게 만드는 단순림 인공조림에서 벗어나 미래의 기후·기상 변화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 식재 결정을 해야 할 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