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인류가 기후 위기에 맞서 파리협정을 채택한 지 10년이 되는 해다.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모두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동참하겠다며 파리협정에 합의했다. 지구 평균 기온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도 밑으로 유지하고, 1.5도로 제한하기 위한 노력은 이제 인류 공동 과제가 됐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전략인 탄소 중립은 전 세계의 공동 목표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COP29는 파리협정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한 회의였다. 특히 약 10년간의 논의 끝에 제6조 세부 이행 규칙이 타결되면서, 국제 탄소 시장 운영을 위한 실질적 기반이 마련됐다. 이는 국가 간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ITMO(Internationally Transferred Mitigation Outcomes)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자발적 감축 사업을 통해 유연하고 비용 효과적인 감축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국제사회는 이제 탄소 감축의 실질성과 신뢰성, 투명성, 형평성을 핵심 원칙으로 삼아 제6조를 본격 이행하고 있다. 한국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 중 3750만톤을 국제 감축 사업을 통해 달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며, 이런 흐름 속에서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동안 국제 감축 사업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제도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서, 사업 추진을 위한 여건이 마련됐다.

이러한 정책은 국내 감축 여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국제 감축을 통해 NDC 달성을 보완할 수 있게 하는 전략적 선택이다. 특히 기술·금융 역량을 갖춘 우리 기업들에는 새로운 시장에 진출하고, 글로벌 기후 리더십을 확보할 기회가 된다. 나아가 우리나라가 에너지 전환, 산림 보호, 청정 기술 보급 등 개발도상국의 기후 대응을 지원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국제 협력의 모범을 보인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장기적으로 제6조 이행은 우리 배출권 거래제(ETS)의 국제적 위상을 재정립하고, EU ETS 등 해외 탄소 시장과 연계할 가능성을 높이는 기반이 될 수 있다.

지난 4일 한화진(오른쪽)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이 요코 알렌더 에스토니아 의회 환경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한 위원장과 알렌더 위원장은 양국의 기후·에너지 정책 관련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제공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우선, 국제 감축 사업의 환경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교한 사업 설계와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 부적절한 크레디트 발행이나 이중 계산 같은 리스크를 차단해야 국제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다음으로, 민간 기업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제도적 인센티브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 시행 절차나 추진 체계, 투자 재원 등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명확한 틀(framework)을 설계해야 한다.

국가 간 협력 채널도 확대해야 한다. 탄소 시장 기반의 협력은 감축 사업의 토대가 되며, 장기적으로는 신뢰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업이 안정적으로 수행되도록 한다. 한국도 이미 여러 국가와 양자 협정·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한 바 있다. 다만 이를 실질적 프로젝트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략적 기후 외교와 민관 협력이 필요하다.

탄소 중립은 어느 한 국가의 선택이 아니다. 인류 모두가 협력해야 할 공동 목표다. 파리협정 제6조가 타결된 뒤, 협정 10주년을 맞은 국제사회는 기후 행동의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기후 위기를 국제 협력의 동력으로 바꾸는 탄소 시장이 열렸고, 경쟁과 협력이 공존하는 무대에서 각국은 국제 감축 사업을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는 기술력, 정책 경험, 글로벌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게임의 설계자로 도약할 기회를 맞이했다. 이제 정교한 제도 마련과 긴밀한 민관 협력으로 이 기회를 성과로 이어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