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경북 구미 SK실트론 2공장 내 초순수 국산화 플랜트 시설에서 한국수자원공사 관계자가 초순수 설비를 점검하고 있다. 수공은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돼 배출되는 물을 정화해 초순수로 만드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한국수자원공사 제공

챗GPT는 200㎖ 물 한 컵을 마셔야 질문 6개에 답할 수 있다. AI(인공지능) 기술을 구현하는 데 필요한 대규모 데이터를 저장·처리·관리하는 데이터 센터를 운영하는 데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전력 소모가 많고 쉽게 뜨거워지는 데이터센터를 관리하려면 많은 양의 냉각수와 발전수가 필요하다. 냉각수는 서버를 한 번 식히고 나면 80% 정도가 증발하고, 남은 물도 오염도가 심해 다시 쓰기가 사실상 어렵다. AI 시대는 곧 물의 시대인 셈이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AI 수요만큼 막대하게 소비되는 물 확보가 경쟁력인 시대다. 2021년 기준 세계 반도체 산업의 연간 물 소비량(약 1억t)은 인구 750만명의 홍콩이 한 해 쓰는 물의 양(약 1.2억t)과 비슷했다. 한국수자원공사(수공)는 이런 물 확보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기존 수원지에 AI 기술을 도입해 양질의 용수 생산과 낭비 없는 공급을 이끌고 있고, 하수 재이용·해수 담수화 등 새로운 물 공급망도 구축하고 있다.

수공이 반도체 산단의 물 부족을 해결한 것은 하수 처리수 재이용이다. 하수처리장에서 처리돼 배출되는 물은 일반 공업용수보다 오염도가 높다. 이를 정화해 다시 공정에 투입되도록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수공과 2022년 업무 협약을 맺고 하수 처리수 재이용 폭을 넓히고 있다. 2030년까지 경기 용인 기흥·화성·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증설하면서 새로운 물 수요를 하수 재이용수로 확보하기로 했다. 단계적으로 삼성전자에 하루 33만t의 하수 재이용수가 공급될 예정이다.

‘반도체 생명수’라 불리며 고도의 생산 기술력이 필요한 ‘초순수’도 하천수 대신 하수 재이용 등 대체 수자원을 활용, 생산하기 위해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하수 재이용수에 잔존하는 미세 물질은 기존 초순수 플랜트에서 잘 제거되지 않아서 초순수 생산에 바로 사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이에 수공은 작년 8월부터 미국 예일대 등과 함께 하수 재이용수를 기반으로 한 초순수 생산 기술 개발을 위한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수공은 내년 말까지 기술 개발 및 시제품 제작을 완료해 국내에서 제품 실증에 착수하고, 2028년 7월까지 현장 적용 가능성을 평가할 예정이다.

수공은 국내 기업이 ‘물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워터 포지티브(Water Positive)’다. 이는 기업이 취수량보다 더 많은 물을 자연으로 돌려보낸다는 개념이다. 물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공정 안에서 돌도록 만들어 물 사용량을 줄이면서 극단적 가뭄이 오더라도 물 위기를 맞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생산 시설 증가에 따라 늘어나는 물 수요를 하수 재이용수 등을 활용해 충당하도록 하면서 2030년 용수 취수량을 2021년 수준으로 절감하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

수질 관리도 달라지고 있다. 수공은 세계 최초로 AI 기술을 정수장에 적용했다. 이상 수질을 감지해 정수 공정을 자율 관리하는 것이다. 그동안 정수장은 이상이 감지됐을 때 숙련 기술자가 공정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기술자의 ‘판단’에 따라 정수의 질이 달라졌다. 사람 손을 타다 보니 정수장마다 편차가 생겼고, 문제 발견 시점부터 해결까지 시차가 생겼다. 수공은 지난해 전국 43개 광역상수도 정수장에 AI 기술을 적용해 즉각적인 물 관리가 가능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