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영남을 할퀸 화마(火魔)가 경북 청송 주왕산국립공원까지 덮쳤다. 주왕산국립공원 전체 면적(1만610ha·헥타르)의 약 3분의 1인 3260ha가 불탔다. 여의도 면적(290ha)의 약 11배가 휩쓸려 간 것이다. 국내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산불 중 규모가 가장 컸다.
지난 11일 만난 주대영(59) 신임 국립공원공단 이사장은 “세계 유수의 국립공원은 ‘감시’와 ‘예방’을 통해 산불을 예방하고 있다”면서 “국립공원은 생태의 보고인 만큼 주왕산의 아픔을 자양분으로 국립공원 산불 대비 체계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했다.
-산불을 계기로 국립공원에 임도(林道)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립공원은 생태적 연결성이 큰 공간이다. 각국 국립공원이 임도를 제한하는 것은 서식지를 단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형 포유류, 양서·파충류, 곤충처럼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하지 않은 생물은 도로 등 인공 구조물에 특히 민감하다. 임도를 통해 외부 차량이 자주 드나들게 되면 외래 식물종이나 병원균이 들어올 수도 있다. 임도는 임업을 위해 닦는 길이다. 국립공원은 산세가 험해서 임도를 내기에 적합하지 않다. 국립공원은 국립공원의 방식으로 산불에 대비하고 대처해야 한다.”
-어떻게 재난에 대비할 건가.
“예방과 대응 체계 강화가 첫째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처럼 인공지능(AI) 연기 감지와 감시 카메라를 통한 실시간 산불 감시 시스템으로 조기 대응 속도를 높여 갈 것이다. 병에 걸리거나 노화로 메말라 불이 났을 때 자칫 땔감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사목을 인공위성을 통해 탐지해 제거하는 등 위험 요소도 줄일 것이다.”
-기후변화 시대에 생물 다양성을 지키는 게 과제다.
“국립공원은 생물 다양성 위기의 최전선에 있다. 지리산과 한라산 고산 생태계에 자생하는 구상나무가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30년간 기온 상승, 적설량 부족으로 고산 생태계가 급속히 축소됐고, 구상나무 군락이 쇠퇴하고 있다. 이는 한 종(種)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변화로 인해 고산 생태계 전체가 구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공단은 국립공원 내 생물 2409종의 유전 자원을 확보했고, 기후변화 취약종 176종의 종자를 시드 볼트(Seed Vault·종자 보관소)에 기탁해 미래 멸종에 대비하고 있다.”
-생물과 식물 복원 사업은.
“2004년 반달가슴곰을 시작으로 산양, 여우 등 멸종 위기종 서식지 확대와 개체군 증식을 이어가고 있다. 멸종 위기 및 자생식물 34종에 대한 증식 기술을 개발해 국립공원 8곳에서 현장 복원하고 있다. 또 자연숲 조성, 해초지·염습지 복원 등 훼손지 복원으로 생태계의 자생력을 높이고 있다. 야생동물들이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야생동물 생태 통로도 설치·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반달가슴곰이 탐방로에 나타나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2015년부터 작년까지 10년간 지리산에서 반달가슴곰이 탐방객에게 목격된 사례는 10번 있었다. 이 기간 지리산 탐방객 수는 3207만명이었다. 규모를 볼 때 반달가슴곰을 마주치는 건 약 320만분의 1이라는 극히 낮은 수준의 확률이다. 작년에 목격됐던 반달가슴곰도 사람을 보자마자 스스로 숲속으로 이동했다. 탐방로나 민가로 접근하는 등 이상 행동을 하는 개체는 시설에서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또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반달가슴곰의 동태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있다. ‘곰 스프레이’도 지리산국립공원 사무소와 대피소 등에 배치돼 있다. 무엇보다 탐방객이 정규 탐방로를 벗어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