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가덕도 신공항의 ‘2029년 개항’이 사실상 무산됐다. 이 건설 공사의 우선협상대상자인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28일 “공사 기간을 착공 후 9년으로 늘려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기본 설계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정부는 그동안 활주로와 터미널 등을 먼저 지어 2029년 12월 우선 개항하되, 완공은 착공 후 7년 내 하겠다고 밝혀왔다.
수의계약 방식으로 진행 중인 이 공사는 국가계약법상 정부가 내건 공사 기간 등 조건을 변경하는 게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조건 변경을 요구했다는 건 사실상 공사 진행이 어렵다고 선언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는 이날 당초 요구대로 기본 설계안을 보완하라고 요구하면서 “현대건설이 응하지 않으면 다음 입찰 방식 등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고 다른 건설사를 찾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사업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네 차례 유찰되는 등 시작부터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 사업은 6월 대선을 앞두고 다시 쟁점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부산시는 이날 ‘유감’을 표명하며 “공사는 (계획대로) 7년 내에 마칠 수 있도록 진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개항 지연 관련 진상 조사를 요구하겠다고 했다.
◇현대건설 “정부 제시한 조건으론 도저히 못 맞춘다”
가덕도 신공항은 부지 조성 공사에만 10조5000억원이 투입되는 역대 최대 규모 토목 공사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네 차례 유찰 끝에 현대건설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고, 현대건설 컨소시엄은 6개월가량 기본 설계안을 작성해 이날 국토교통부에 최종안을 제출했다.
국토부는 당황스럽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법적으로 조건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발주한 대로 설계안을 맞춰 오는 게 상식”이라며 “안 될 것 같았으면 애초 왜 참여했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부가 발주한 공사 계획엔 공사 기간, 공사비 등이 명시돼 있었다. 이에 현대건설 컨소시엄이 응해 놓고, 이제 와 입장을 바꿨다는 것이다.
반면 현대건설 컨소시엄 측은 “실제 전문 인력이 6개월간 자세히 따져보니 정부가 제시한 조건으로는 도저히 공사가 어렵다는 결론이 난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컨소시엄 관계자는 “올해 말 공사에 착공해도 4년 안에 바다를 메워 활주로 등을 짓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현대건설 컨소시엄 측은 공사비 증액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정부가 공사비로 10조5000억원을 제시했지만, 최근 원자재 값 상승과 기간 연장 등을 감안할 때 1조원가량 증액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토부는 이날 현대건설 측에 공사 기간을 다르게 제시한 이유에 대한 설명 자료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현대건설 측이 설계를 보완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다음 입찰 방식 등을 신속하게 검토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현대건설 컨소시엄 대신 다른 건설사를 찾는 입찰 공고를 다시 진행하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난해 입찰이 네 차례나 유찰됐던 걸 감안하면 현대건설 컨소시엄 외 적임자가 나올지 의문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공사를 맡겠다는 건설사가 없으면 사업 자체가 무기한 미뤄질 수도 있다. 유정훈 아주대 교통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재정 사업의 최종 결정권자인 기획재정부가 나서 적정 공사비 등을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건설 업계에선 무리하게 공항 건설을 밀어붙인 결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동남권 신공항 검토 지시로 시작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은 2016년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나 폐기된 사업이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1년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선거 공약으로 재부상했다. 특별법이 발의됐고 그해 2월 국회를 통과했다. 예비 타당성 조사도 면제됐다.
2030 부산 세계 박람회(엑스포) 추진은 공사 기간을 줄이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초 이 공항은 2035년 6월 개항을 목표로 추진됐는데,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앞두고 2029년 12월로 5년 이상 당겨졌다. 공사 기간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계속 지적됐지만 정부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실제 업계에선 공사 기간 단축에 따른 안전성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당초 국토부는 2022년 진행한 사전 타당성 검토 때 공항 전체를 해상에 지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공사 기간이 5년 단축되면서 해상 매립량을 줄이고 육·해상에 걸쳐 짓는 것으로 변경됐다. 이는 부등침하(지반이 불균등하게 내려앉는 현상) 우려가 있어 사전 타당성 검토 때 배제하기로 한 방식이었다. 육상과 해상 연약 지반의 지지력 차이가 크면 바다 쪽 활주로가 육지 쪽보다 많이 가라앉아 항공기 이착륙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가덕도 신공항 개항 지연 문제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부산이 엑스포 유치에 실패해 개항을 앞당길 이유가 사라졌지만, 여야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이미 부산 시민에게 약속한 ‘2029년 개항’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날 더불어민주당은 개항 지연 관련 진상 조사단을 구성할 계획이라며 “윤석열 전 대통령과 박형준 시장, 박상우 국토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