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확산으로 ‘집콕’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겠다는 이가 많다. 누가 뭐래도 집콕은 ‘장비’전. 각종 소셜미디어에선 재택 생존을 위한 신종 병기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연말 송년회 단골 코스인 노래방 대신 ‘홈 노래방’을 꾸미고, 전문 셰프처럼 수비드(sous vide·진공포장한 음식을 정확히 계산된 온도의 물로 가열해 조리하는 방법) 조리 도구를 갖춰 스테이크를 익혀 먹는다. ‘홈바’를 꾸며 나만의 칵테일 파티를 하는 이도 있다. 집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보내는 연말 파티 신풍속도를 들여다봤다.

노래방 마이크와 미니 조명으로 신혼집 거실이 노래방으로 변신했다. 예비 신혼 부부인 경기도 하남 김세민, 나지민씨는 회식 없는 연말 일찍 퇴근해 둘만의 홈파티를 즐겼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노래방, PC방으로 변신한 집

‘셀프 자가 격리 노래방 개장’. 지난 14일 경기도 하남시에 사는 예비 부부 김세민(29)·나지민(25)씨 신혼집 거실은 별안간 노래방으로 변신했다. 블루투스 노래방 마이크에선 애창곡 반주가 흘러나오고 주먹만 한 미러볼을 켜자 거실 천장과 벽면엔 화려한 조명이 흘렀다. 남편은 잔잔한 반주에 맞춰 노래를, 아내는 야광봉을 흔들며 분위기를 돋웠다. 주변 이웃을 의식해 음량을 한껏 낮췄지만, 기분만큼은 데이트 코스로 자주 가던 노래방이나 다름없었다. 발라드 위주로 각자 애창곡을 몇 곡씩 부른 뒤 부부는 방 한쪽에 나란히 꾸민 PC방으로 가 좋아하는 PC 게임을 즐겼다.

신혼집 침실 한쪽에 게임용 PC를 설치한 김세민, 나지민씨 부부. 불필요한 혼수 대신 집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꾸몄다. / 김종연 영상미디어 기자

“예년 같으면 외식하고 영화 한 편 보고, 칵테일바나 노래방에 갔을 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일상적인 데이트가 어려워져서 신혼집을 빨리 꾸미게 됐죠. 코로나 사태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불필요한 혼수 대신 집콕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요.” 부부는 “노래방 마이크와 5000원짜리 조명이 스트레스 푸는 ‘가성비 혼수’가 됐다”며 웃었다.

의료계에 종사하는 강동수(32·경기 일산)씨는 올 연말 ‘가족들과 칵테일 파티’를 계획 중이다. 칵테일을 좋아해 그동안 칵테일바를 즐겨 찾았지만, 코로나 감염증 확산 후 발길을 끊은 지 오래. 일 특성상 병원 출입이 잦아 코로나에 특히 주의하고 있다는 강씨는 최근 ‘홈텐딩(홈+바텐딩, 집에서 칵테일을 만들어 즐기는 것)’에 입문했다. 주류 브랜드에서 한정판으로 판매한 홈텐딩 패키지를 구해 도전했다. 시험 삼아 진토닉, 롱아일랜드티, 마르가리타 등 쉬운 칵테일부터 만들어 가족들과 시음했다. 좋아하는 양주와 와인을 진열·보관할 수 있는 작은 거치대도 마련했다. 거리 두기를 유지하며 당분간 홈술을 즐길 계획이다. “술을 한잔도 못하셨던 어머니께 도수 낮은 칵테일을 만들어 드리니 좋아하셨어요. 온 가족이 모처럼 스트레스를 날렸답니다.”

돌이켜보면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이 험한 세상에서 지루한 집콕 생활을 버틴 건 ‘비밀 병기’ 덕이었다. 집밥에 지쳐갈 때쯤 ‘밀키트’(meal kit·요리에 필요한 식재료와 양념을 세트로 구성한 식품)로 한 끼를 해결했다. 무료함을 견디려 거품기로 ‘달고나 커피’를, 와플기로 ‘크로플(와플 형태의 크루아상)’이란 걸 만들어 먹었으니까.

연말 송년회 시즌엔 ‘회식 아이템’들이 홈 파티 ‘비장의 무기’로 소환되고 있다. ‘오늘은 홈술’을 펴낸 홈술(집에서 즐기는 술) 크리에이터 류지수(29)씨는 “연말이면 회식이나 모임으로 마시고 싶지 않은 술을 마시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올해는 집에서 자신에게 맞는 술을 발견하고 싶어 홈텐딩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했다. 네이버 주류 정보 창구이자 술 동호인 커뮤니티엔 연말 모임 장소 추천 글 대신 홈술 관련 글들이 넘쳐난다.

'홈술' 크리에이터 '코난' 류지수씨가 집에서 칵테일을 만들고 있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홈술' 크리에이터 '코난' 류지수씨가 만든 홈파티 칵테일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캠핑용 장비가 홈 파티 도구로

닭갈비 집이나 전문 고깃집에서나 볼 법한 양손잡이 철판구이·볶음팬 ‘그리들’은 연말 홈 캠핑 파티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다. 코로나발 캠핑 붐이 일면서 캠핑용품의 하나로 주목받기 시작한 그리들이 연말 집 안 요리 도구로 떡 하니 한자리를 차지했다. 온라인 쇼핑몰 ‘G마켓’에 따르면 캠핑 비수기에 접어든 최근 한 달(11월 10일~12월 10일)간 그리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69% 신장률을 보였다. 인스타그램에서 ‘그리들’을 검색하면 캠핑장뿐 아니라 집 안에서 그리들을 활용해 요리하는 게시물이 2만장 가까이 올라와 있다.

용인에 사는 파티플래너 전근영(45)씨도 올 연말 홈 파티 아이템으로 그리들을 선택했다. 예년 같으면 파티플래너로서 일년 중 연말이 가장 바쁠 때지만 올해는 코로나로 파티와 축제, 이벤트가 줄줄이 취소되면서 반강제적으로 휴식 중이다. 연말 버킷리스트의 하나였던 ‘가족 여행’을 포기한 대신 지난 15일 일찌감치 집 마당에서 홈 캠핑 형식의 파티를 했다. 각자 방에서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으로 지친 가족들은 동그란 그리들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춘천식 닭갈비, 장어구이 등을 차례로 요리해 즐겼다.

용인에 사는 파티플래너 전근영씨네 가족은 집 마당에서 홈 캠핑 파티를 하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용인 전근영씨네 가족의 연말 홈파티 비밀 병기인 '그리들'. 동그란 철판에 모여 앉아 닭갈비를 나눠 먹는 것만으로도 파티 분위기가 난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전씨는 “맛있는 요리가 있으면 공감대가 형성되기 마련”이라며 “그리들은 호떡이나 가래떡 굽기에도 안성맞춤이고, 파전, 스테이크 요리까지 웬만한 요리는 다 가능해 ‘먹방 파티’할 때 유용하다”고 했다. 그리들과 함께 ‘구이바다’라 불리는 가스 스토브도 빠질 수 없단다. 고기 구이부터 전골, 라면까지 다채로운 요리를 간편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캠핑용품으로 가정에서도 두루 사용한다.

연말 홈캠핑 파티에 자주 등장하는 '그리들'. 스테이크(위)와 떡구이(아래)를 비롯해 부침개, 달걀 프라이까지 다채로운 음식을 만들어 볼 수 있다. 단, 기름기 많은 고기나 음식을 조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 봉쥬르팜 제공

연말 홈 파티에 스테이크를 포기할 수 없다는 이들 사이에선 ‘수비드 스테이크’가 주목받고 있다. 고기를 숙성시켜 수비드 머신을 이용해 저온 방식으로 익혀내는 스테이크로 전문 레스토랑에서나 맛볼 수 있었다. 예능에 등장하면서 마니아들 사이에서 집콕 생활에 재미를 더하는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해외 직구로 수비드 머신을 사 직접 수비드 스테이크 요리에 도전한 대기업 연구원 박래영(45)씨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지만, 일정한 맛의 스테이크 요리를 즐길 수 있어 당분간 외식은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했다. 박씨는 “연말 가족들과 홈 파티 할 때 수비드 스테이크와 함께 외국 영화에 종종 등장하는 크리스마스 음료 에그노그(eggnog·술, 달걀, 설탕, 우유를 넣어 만든 음료) 만들기에 도전해볼 것”이라고 했다.

경기도 동탄에 사는 박래영씨가 수비드 머신을 이용해 스테이크를 요리하고 있다. / 박래영 제공
박래영씨가 가족을 위해 완성한 '수비드 스테이크'. / 박래영 제공

◇59.2% “집에서 연말 보내”

서울 및 수도권과 일부 지역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유지되는 연말, ‘아무튼, 주말’이 SM C&C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 프로’(Tillion Pro)와 함께 20~60대 성인 남녀 5018명에게 ‘코로나 연말 계획’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 중 59.2%가 안전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해 ‘집콕’(35%)이거나 ‘홈파티’(24.2%)를 하는 등 집에 머무는 연말을 보낼 것이라고 답했다. ‘여행’과 ‘외식’은 각각 24.5%, 16%였다.

‘홈 파티 할 예정’이라고 응답(1213명)한 이들이 ‘홈 파티 할 때 가장 고민하는 것’은 음식(42.7%). 다음은 여가 활동(22%)인 것으로 나타났다. 파티 분위기 연출(19.7%)이나 참여 인원(15.6%)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음식 외 홈 파티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아이템은?’이란 질문(복수 응답)엔 응답자 중 절반가량이 ‘함께 만들거나 즐길 아이템’(48.8%)이라고 답했다. ‘빔 프로젝터 등 영화 관람 시스템’(23%), ‘요리를 풍성하게 도와주는 도구’(17.9%), ‘음향 및 노래방 마이크’(13.1%), ‘게임기’(12.5%)가 그 뒤를 이었다.

'이번 연말 계획은' 설문

최근 소비 동향도 설문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G마켓에 따르면 집콕이나 홈 파티를 위한 용품 판매 신장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전반적으로 늘어났다. 그중 ‘크리스마스트리’가 112%, 간식이나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먹는 ‘간식 메이커’가 246% 증가했다. 영화 관람 등을 위한 프로젝터 판매도 56% 늘었다. ‘거리 두기’가 이어지는 만큼 집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가 고민인 연말이 됐다는 얘기다.

파티 분위기를 연출하는 칵테일들. /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홈 파티, 코로나 우울증에 도움

정신·심리 전문가들은 연말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홈 파티가 ‘코로나 블루’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시기가 시기인 만큼 최소한의 인원이 함께할 것을 권했다. 정신과 전문의 최명기 청담하버드심리센터 소장은 “연말을 마무리하는 작은 파티나 선물은 1년을 살아온 자신에게 수고했다는 심리적 보상을 해주는 기능을 한다”며 “‘코로나 때문에’라는 이유로 무조건 집콕만 하기보다는 집에서라도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 오붓하게 이벤트를 즐기는 것이 코로나 블루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특히 대인 관계로 삶의 만족도가 높아지는 성격이라면 마냥 조용히 칩거만 할 경우 우울감이 심해질 수 있다. 크리스마스 용품으로 집을 꾸미거나 새로운 물건들을 다루면 우울한 기분을 환기할 수 있다.

최명기 소장은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신체를 쓰지 않게 되고, 신체를 쓰지 않으면 누구나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이럴 때 새로운 도구나 물건을 접하면 일정 부분 몸을 쓰게 되고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거품기를 활용해 달고나 커피를 만들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도 비슷한 이치다. 최 소장은 여럿이 모이기보다는 홀로 또는 직계가족 위주 소박한 파티를 열고 영상이나 화상, 사진으로 파티 분위기를 공유하는 비대면 연말 파티를 제안했다. “이미 많은 이가 1년 가까이 비대면 방식의 사회적 활동을 해왔기에 연말 파티 역시 따로 있어도 함께 있는 듯 얼마든지 비대면으로 즐길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