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가 버번위스키가 먹고 싶어졌다. 버번위스키는 옥수수로 만든 위스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버번이 오븐에 구운 옥수수와 잘 어울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어젯밤, 그렇게 먹어 보았다. 오븐에 구운 초당 옥수수를 먹다가 ‘버번위스키가 옥수수로 만든 술이었지?’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버번을 따랐다. 집에는 두 종류의 버번이 있는데 하나가 짐빔, 하나가 메이커스 마크다. 메이커스 마크를 좀 먹다가 역시 안 되겠다 싶어 하이볼로 만들어 마셨다.
남들은 달콤하고 부드럽다고 하는 메이커스 마크 특유의 맛이 있는데 나는 잘 적응이 되지 않는다. 공업용 본드 맛이라고 해야 할지 좀 거북한 맛이 느껴진다. 하지만, 메이커스 마크 병은 참으로 아름답고, 하이볼로 만들어 마시는 메이커스 마크는 꽤나 맛있다. 하이볼은 위스키와 토닉워터나 진저에일, 또는 탄산수를 1:3으로 섞으면 된다. 위스키의 맛에 따라 진저에일을 넣기도 하고 탄산수를 타기도 하는데 어제는 진저에일을 골랐다. 메이커스 마크의 달착지근하면서 강하게 찌르는 맛에는 진저에일이 어울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술을 술이 아닌 것과 섞는 것에 반감을 드러내는 분들이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특히 그들은 위스키에 관해서는 더 엄격하다. 위스키의 순수한 그 상태를 보존하는 채로 마시는 것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근본주의자랄까. 술을 물이나 음료나 얼음에 타는 걸 ‘범죄’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다. 가끔 궁금해진다. 평양냉면에 식초나 겨자를 타는 걸 죄악시하는 분들과 위스키에 다른 것을 타는 걸 반대하는 분들이 만나면 말이 잘 통할까, 아니면 그렇지 않을까. 어쩌면 그들은 같은 사람일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섞는다. 술에도 물이나 음료를 섞고, 평양냉면에도 겨자와 식초를 탄다. 순수한 것은 순수한 것대로 좋지만 섞으면 또 다른 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탁월한 선택이었다. 버번으로 만든 하이볼에 직화를 한 건 아니지만 오븐으로 구워서 불맛이 느껴지는 옥수수는 잘 어울렸다. 그리고 옥수수와 버번이라는 조합이 더없이 미국적이라고 생각했다. 옥수수는 대표적인 미국의 작물이고, 버번은 곧 미국 위스키이고, 옥수수로 위스키를 만드는 것도 미국적이기 때문이다.
버번위스키 법령에는 이런 조항이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증류되어야 하고, 옥수수의 비율이 51% 이상이어야 한다는. 옥수수가 50%이면 버번이 못 되고, 옥수수가 58%라도 미국 밖에서 증류되면 버번이 아닌 것이다. 옥수수가 51%이고 호밀(Rye)가 49%이면 버번위스키가 되고, 호밀 51%에 옥수수가 49%면 라이 위스키가 된다. 이렇게 옥수수와 호밀로 위스키를 만드는 건 미국적인 발상이다.
연극을 보고 나와 참을 수 없이 버번이 당겼던 적이 있다는 것도 떠올랐다. 연극 무대에 옥수수 냄새가 진동했던 것이다. 극 중 인물 중 하나가 옥수수 자루가 수북하게 달린 옥수숫대를 다발로 안고 무대로 등장했는데, 순간 마스크를 뚫고 들어왔다. 옥수수 냄새가 말이다. 갓 꺾은 옥수수의 풋내란 이렇게 강렬한 거구나라고 생각할 정도로 강한 냄새였다. 미국인 극작가 샘 셰퍼드가 미국 일리노이의 농장을 배경으로 쓴 연극이었다. 몇 달 전의 일이라 연극의 대사들은 희미해졌지만 옥수수 냄새만은 강렬하게 남아 있다.
다시 메이커스 마크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실 나는 어제까지만 해도 이 버번에 관심이 없었다. 앞에서 ‘본드 맛’이라고 썼던 것처럼 그다지 맛있게 느끼지 못했고, 그러니 다시 마실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켄터키는 석회암 지대이고, 이 석회암층을 통해 걸러진 물이 버번에 독특한 풍미를 더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석회암 지대라니! 실제로는 본 적이 없고 영화나 사진에서만 본 적이 있는 석회암 지대는 내게 신비의 영역이다. 이보다 더 영롱할 수 없다는 생각을 주는 지형인 것이다.
메이커스 마크도 켄터키 산(産)이었다. 미국 켄터키의 로레토, 스타 힐 농장에 증류소가 있다고 라벨에 적혀 있었다. 동네 들르실 수 있음 들르라는 친근한 인사의 말도 함께. 위스키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곤 하는 ‘증류소 투어’를 자기들도 하고 있다는 말을 이렇게 부드럽게 쓴 것으로 보였다. 아직까지는 ‘위스키 증류소를 방문해보고 싶다’라는 구체적인 소망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그러기에는 위스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고, 나는 위스키를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렇다. 싫은 건 아닌데 위스키보다 좋아하는 술들이 많아서 아무래도 위스키는 나의 주류 순위권에서는 좀 밀리는 편이다.
그런데, 메이커스 마크 증류소에는 좀 가고 싶다. 빨간 왁스를 병에 들이붓는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이커스 마크 병이 아름답다고 앞에서 적었는데, 밑변보다 윗변의 넓이가 더 넓은 사각형의 몸체와 이어지는 병목의 조화와 비례가 적절해서이기도 하지만 병목 아래까지 흘러내린 빨간 왁스가 아름다움의 요체라고 생각한다. 그건 빨간 촛농이 흘러내린 것처럼도 보인다. 그런데 직접 이걸 해볼 수 있다니…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흘러내린 빨간 왁스는 장식 기능만 있는 것도 아니다. 밀봉을 하면서 아름다움을 더한 것이다. 게다가 같은 모양으로 흘러내린 왁스는 하나도 없다. 증류소에서 수작업으로 하나하나 빨간 왁스를 병에 들이붓기 때문이다. 1953년 이래로 생긴 공정이라고 한다. 그 해, 메이커스 마크 가문은 6대째 내려오던 이전 레시피를 폐기하고 새로운 조합으로 버번을 만들기 시작한다. 심지어 ‘불태워버렸다’라고 하며, 메타포가 아니라 실제라는 말까지 한다. 그러면서 병도 새로 만들고, 병에 빨간 왁스를 붓는 일도 시작했다고. 모두 병에 적힌 글이다. 그리고 자기는 새로운 조합으로 만든 메이커스 마크를 4대째 만들고 있다며 병에 ‘4대째’라는 로고를 박아두었다.
병을 갖고 싶어서 산 술이었다. 다시 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하이볼을 만들어 먹고 생각이 바뀌었다. 메이커스 마크로 만든 하이볼은 매력적이고, 또 다른 모양으로 흘러내린 메이커스 마크 병도 갖고 싶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