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은 이제 누굴 뽑나요?”
지난 5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경선이 끝난 직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보수 성향 20~30대 남성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커뮤니티에는 “2030은 다음 생을 기약하자” “갈 곳 잃은 2030을 구원해줄 마지막 희망은 허경영” 등의 글도 올라왔다. 이들 대부분은 홍준표 후보를 지지했는데, 본선에서 지지할 만한 후보가 없다는 우려를 이같이 표현한 것이다.
대선 후보 여야 2강(强) 대진표가 ‘이재명 대 윤석열’로 확정된 가운데 2030, 즉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의 표심이 주목받고 있다. 현재 2030은 여론조사상 부동층 비율이 가장 높은 세대이고, 양당 경선 과정에서 이들의 지지는 이재명·윤석열 후보보다는 2위로 낙선한 이낙연·홍준표 후보에게 쏠려 있었다. 4050은 이재명 후보가, 60대 이상은 윤석열 후보가 우세한 가운데, 공중에 붕 떠있는 듯한 2030의 표심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
◇부동층 최대 2030
“지금 제일 심각한 게 이재명이 2030 표를 거의 못 얻는다는 것.” 이재명 후보 확정 뒤 한 진보 성향 커뮤니티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은 129개의 추천을 받았다.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서는 윤석열 후보 확정 뒤 국민의힘 탈당 인증이 이어졌다. 경선 이후 사흘간 2910명의 책임당원이 탈당했는데, 이 중 2107명(72.4%)이 2030인 것으로 나타났다.
KBS·한국리서치가 지난 5~7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선 가상 5자 대결 여론조사에서 투표할 후보가 없다거나 모른다는 부동층의 비율이 가장 높은 세대는 20대(40.7%)였다. 30대 부동층 비율은 32.3%였다. 20대는 10명 중 4명이, 30대는 3명이 부동층인 것이다. 이렇듯 전 연령대 평균 부동층 비율(23.4%)에 비해 2030의 부동층 비율이 높다는 점, 2030 가운데 ‘현재 지지하는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는 응답자(20대 64%·30대 56.9%)가 많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이들의 표심이 대선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양당의 후보 확정 전 여론조사에서 2030의 지지율은 2위 후보들이 더 높았다. MBN·알앤써치의 지난달 5~6일 민주당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를 보면, 이재명 후보의 20대 지지율은 22.8%, 30대 지지율은 28.4%로, 이낙연 후보(20대 30.6%·30대 39%)보다 낮았다. 뉴데일리·시사경남·PNR의 지난달 29~30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쟁력 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20대 21.5%, 30대 24.7%로, 홍준표 후보의 2030 지지율(20대 52.7%·30대 47.6%)을 한참 밑도는 수치였다. 김미현 알앤써치 소장은 “다른 세대에 비해 정치 관심도가 떨어지는 점, 자신들을 대변할 후보가 없다고 느끼는 점, 이재명·윤석열 후보의 비호감도가 상당한 점 등의 이유로 2030의 높은 부동층 비율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낙연·홍준표 후보를 지지했던 2030의 표심이 어디로 갈지를 지금 판단하기는 이르다”고 했다.
◇“洪은 우리를 대변했다”
20대 대학원생 천모씨는 이번 국민의힘 대선 경선을 계기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천씨는 “홍준표 후보는 달랐다.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줬다. 그런데 (홍 후보가 떨어져서) 이젠 뽑을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낙연 후보를 지지했던 여성 프리랜서 박모(34)씨는 본선에서 뽑을 사람이 없어 고민이라고 했다. 박씨는 “2030은 이념이나 진영보다는 인물이 더 중요하다”면서 “이재명 후보는 대장동, 형수 욕설 등 논란거리가 너무 많다. 그렇다고 ‘쩍벌’ 윤석열 후보에게 표를 주기도 싫다”고 했다. 회사원 이모(37)씨는 “요즘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가 청년들 만나 사진을 찍은 기사가 많이 나오던데, 이런 보여주기식 쇼가 2030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030이 이재명·윤석열 후보에게 선뜻 표심을 주지 않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천씨처럼 이·윤 후보가 자신들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두 후보가 일자리·부동산 등 2030이 중요하게 여기는 이슈에서 속 시원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는 점, 기성 정치권 인사들처럼 2030을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공정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2030에게 이재명 후보와 관련된 대장동 개발 특혜·비리 의혹과 윤석열 후보의 ‘꼰대’ 이미지는 악재로 평가된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특히 2030 남성들의 경우 여성만을 우대하는 민주당, 청년을 무시하는 국민의힘에 분노해왔다”며 “그런데 홍준표 후보가 2030을 신경 쓰는 모습을 보이면서 모병제, 사시 부활 등 그들이 원하는 공약을 냈고, 이에 2030은 정치 효능감을 맛보면서 격렬한 지지를 보냈다”고 했다.
박씨 같은 여성 2030 유권자들은 이·윤 후보의 강한 마초적 이미지에 마음을 열지 않고 있다. 한국갤럽의 지난달 19~21일 조사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에게 ‘호감이 간다’고 답한 20대 여성 응답자는 23%, 30대 여성 응답자는 28%였고, 윤석열 후보는 20대 여성 10%, 30대 여성 23%였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2030 여성으로부터 30% 이상의 호감도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이 후보는 ‘형수 욕설’ ‘여배우 스캔들’ 등의 의혹을 받고 있고, 윤 후보는 ‘쩍벌남(다리를 크게 벌리고 앉는 남성)’과 같은 태도 논란을 빚은 바 있어 2030 여성 유권자의 비호감도가 높다는 해석이 나온다.
◇2030 향한 李·尹 구애 통할까
이재명 후보는 최근 매일같이 2030 관련 메시지를 내면서 ‘1일 1청년’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희망 잃은 청년을 구하기 위해 포퓰리즘이 필요하다면 포퓰리즘이라도 기꺼이 하겠다”(7일) “청년의 삶을 개선하는 첫번째 머슴이 되겠다”(10일) 등의 발언을 했다. 2030을 향한 구애 행보는 윤석열 후보도 열심이다. 윤 후보는 6일 ‘대한민국 청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대통령 후보이기 전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들에게 참 미안하다”며 “신명나게 젊음을 바칠 일자리를 만들고, 집 걱정하지 않고 일과 공부에 매진하며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청년의 등의 발언을 했다. 2030을 향한 구애 행보는 윤석열 후보도 열심이다. 윤 후보는 6일 ‘대한민국 청년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대통령 후보이기 전에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청년들에게 참 미안하다”며 “신명나게 젊음을 바칠 일자리를 만들고, 집 걱정하지 않고 일과 공부에 매진하며 편히 쉴 수 있는 보금자리를 만들겠다”고 했다. 이·윤 후보는 나란히 여성가족부를 개편하겠다는 생각을 밝히기도 했는데, 정치 관심도가 높은 20대 남성에 대한 ‘러브콜’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민주당 선대위 전략기획본부 부본부장을 맡고 있는 장철민 의원은 2030 지지율과 관련해 “현재 굉장히 심각한 상황이라는 인식을 당내에서 공유하고 있다”며 “단발성 이벤트로 2030의 지지를 가져올 게 아니라, 다양한 2030의 목소리와 요구를 당이 진지하게 성찰하고 고민해야 한다. 2030으로부터 외면받는 정당은 계속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 측 관계자는 “일단은 홍준표 후보에게 쏠렸던 2030의 마음을 끌어와 아우르는 게 급선무라고 판단한다”며 “2030이 경선 과정에서 윤 후보에 대해 ‘꼰대 같다’ ‘기성 정치인이랑 비슷하다’고 오해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검찰총장 시절의 윤 후보 모습은 2030의 환호를 이끌어낸 바 있다. 긍정적 이미지를 복원하는 작업들이 필요하고,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가장 최근의 선거인 작년 총선에서 20~30대(18·19세 포함) 유권자 비율은 34%였다. 2030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난 재보궐선거에선 오세훈 서울시장에게 더 많은 표를 주는 등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번갈아 찍는 양상을 보였다(출구조사 기준). 전문가들은 ‘스윙보터’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2030이 판을 가를 ‘캐스팅보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2030의 투표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인 점, 과거엔 그들의 투표 참여 증가가 민주당에 유리한 결과를 낳았는데 지금은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 등에서 2030 표심의 향방이 선거 결과를 가를 것”이라면서 “2030은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에, 후보들이 환심을 사기 위한 포퓰리즘적 공약을 남발하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신중하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성철 교수는 “2030의 영향력을 무시하거나, 그들이 결국엔 우리를 지지할 것이란 생각으로 접근하는 정당은 대선에서 큰코다치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