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말의 나는 절에 있었다.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으로 그랬는데…. 그럴 수 없었다. 절에도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정말 다양한 사람이. 이틀인가 지내고 보니 여러 직군의 사람과 말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찻집 보살님, 종무소 아가씨, 운전하는 거사님, 기념품 가게 사장님, 그리고 스님까지…. 스님 말고 절에 머무는 사람을 호칭하는 법도 알게 되었다. 여자는 모두 ‘보살님’, 남자는 모두 ‘거사님’이었다. 다른 절도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그 절은 그랬다.

정말 말을 많이 했다. 기이한 일이었다.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절에 들어갔던 나는, 말을 많이 했고 차도 많이 마셨다. 그렇게 많은 말이 오가는데도 정신이 사납지는 않았다. 말과 말 사이에 차가 있었기 때문일까? 정좌한 큰 스님이 다판에 다구를 하나씩 씻는 동작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졌다. 차는 정말 정신적인 음식이라고 생각했다.

아, 그런데, 그러고 있으니, 술이 그리웠다. 절 사람들은 갑자기 깊은 이야기를 훅 꺼내놓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술이 간절했다. 속세에서는 그럴 때 술을 마시니까. 아니, 나는 술을 마시고도 절대 하지 않을 이야기들을 이 사람들은 차를 마시며 이렇게 할 수 있나 싶었다.

한 남자를 생각하자 절에서 보낸 그 겨울이 떠올랐던 것이다. 베네치아(베니스)에서 쓸쓸하게 자란 남자다. 그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 동방으로 돈을 벌러 간 아버지를 15세가 되어서야 만나게 된다. 그러고는 아버지와 삼촌을 따라 원나라로 간다. 서쪽에서 동쪽으로 먼 길을. 그러니까 옛날 일이다. 배를 타고 가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아 걸었다. 그래서 더 오래 걸렸다. 집을 떠난 지 3년 만에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를 만난다. 그러고서 17년을 원나라에 머문다. 그러다 이란으로 시집가는 원나라 공주를 안내한다는 구실로 겨우 원나라를 떠난다. 베니스에 도착한 것은 원나라를 떠난 지 4년 만이었으며, 베니스로 돌아온 것은 그곳을 떠난 지 24년 만이었다. 세상에나. 돌아와서는 또 감옥에 간다. 이러려고 그 먼 길을 왔나 싶은 답답한 남자. 그의 이름은 마르코 폴로다.

야자 술은 야자나무 줄기에서 나온 수액을 발효시켜 만든 술이다. /shutterstock

너무 쓸쓸하지 않나? 마르코 폴로라는 사람의 생애가. 그가 이렇게 쓸쓸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자 <동방견문록>이 읽고 싶어졌다. 나는 따뜻한 사람은 아니지만 쓸쓸함에는 마음이 기운다. 절 사람들이 했던 말들도 주로 쓸쓸함에 관한 이야기였다. 아프고, 배신당하고, 죽고, 떠나고, 무엇보다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된 이야기. 꽤나 오래된 일이라 이야기의 세부는 기억나지 않지만 듣는 나도 쓸쓸했다. 그래서 술을 마시고 싶었다. 앞의 그 쓸쓸한 사람에게도 한 잔 따라주고 싶었다. 마르코 폴로는 쓸쓸하고, 그래서 절의 그 쓸쓸한 사람들이 떠올랐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에게도 한 잔 따라주고 싶다. 베니스에서도 쓸쓸했고, 원나라에서도 쓸쓸했을 것이며, 돌아오는 길에도, 또 돌아와서도 쓸쓸했을 그 사람에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쓸쓸했을 것만 같은 그에게 말이다. 그런데 무슨 술을? 야자 술이어야 한다. 나는 마셔본 적이 없고, 들어본 적만 있는데 야자나무에서 열린다고(!) 한다. 그 술을 마르코 폴로가 각별하게 생각했다.

저절로 열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노동이 필요하다. ‘열린다’고 한 것은 술을 빚는 게 사람이 아니라 야자나무이기 때문이다. 야자나무 줄기를 자른 데 항아리를 매달아 놓으면 술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공중에 항아리를 매달아 놓은 데에서 말이다. 그러니 역시 ‘만들어진다’보다는 ‘열린다’라고 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하루의 낮과 밤이 지나면 항아리에 술이 차오른다고. 사람이 하는 일이란 가지를 자르고, 항아리를 매다는 것이다. 자른 가지에서 술이 더 안 나오면 나무에 물을 주면 된다. 관수 시설이 있던 때가 아니니 먼 데서 물을 길어왔어야겠지. 물을 주면 다시 술이 퐁퐁 솟아났다고 한다.

그는 이 술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기항지였던 수마트라 왕국에서 마셨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의 수마트라 섬인 그곳에서 말이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 길고도 긴 여행이었을 것이다. 그때 야자 술을 마셨다. 풋내가 나지만 달고 신 맛이 나는 술이라고 그는 적고 있다. 쓸쓸한 그가 딱해서이기도 하지만 또 나는 이 술이 궁금해 <동방견문록>을 읽었다. 스무 살도 안 돼 고향을 떠났다가 마흔이 넘어 간신히 돌아온 남자가 마시는 술이라니 말이다. 이제는 다시 돌아올 일 없는 이국에서 마시는 술. 처음이자 마지막일 그 술. 그 길은 얼마나 멀었을지, 또 술은 얼마나 달았을지.

안타깝게도 내가 읽고 싶었던 절절한 마음 같은 건 없었다. 객창감이라고 하던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런 감정 말이다. 마르코 폴로는 야자 술이 꿀을 물에 탄 맛이라고 한다. 코코넛 워터에 꿀을 타서 먹어보면 야자 술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거기에 알코올은 없고, 코코넛 나무는 야자나무가 아니지만 말이다. 내가 이렇게라도 야자 술 비슷한 걸 먹어보려고 하는 것은, 이 술은 금방 쉬어버려 운송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야자나무가 있는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술이다.

토디(toddy)라고도 한다. 토디를 증류하면 ‘아라크’라는 술이 되는데, 아랍어로 ‘땀’이라는 뜻이라고. 하긴, 앞에서 말했듯이 야자 술은 야자나무의 수액을 가볍게 발효 시켜 먹는 술이고, 그러니 야자가 흘리는 땀이 아닌가. 아라크와 비슷한 술이 ‘우조’다. 토디도 모르고, 아라크도 모르지만, 우조는 좀 안다. 역시 마셔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을까. 꽤나 끈끈하며 쓸쓸한 기행문을 쓰시는 후지와라 신야의 책 <동양기행>에 나오는 우조를 말이다. 여기서 우조는 ‘라크’로 불리고 있다. 터키 앙카라에서 후지와라 신야는 이렇게 말한다. 라크와 똑같은 술을 서아시아나 다른 지역에는 다르게 부르는데, 그리스에서는 ‘우조’, 아랍에서는 ‘아라크’라고 한다고.

이 이야기를 H에게 해주고 싶다. 그는 나를 ‘한 작가’로 부르는 유일한 사람이다. 마르코 폴로와 쿠빌라이 칸과 야자 술과, 토디와 아라크와 우조와 라크와 후지와라 신야에 대해서. 그가 코코넛 나무를 탄 적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세계 테마기행 같은 거에 출연하게 되어 동남아에 갔다가 코코넛 나무를 타는 장면을 찍었다고 했다. 팔꿈치와 손이 다 까졌는데 방송에는 나오지 않았다고도. 그는 쓸쓸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한 작가,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내가 이 이야기를 하면 그는 또 특유의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게, 인생이 원래 그런 거야.” 또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러니까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