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8만 마리. 경기도 성남 모란 민속시장에서 판매하던 개 숫자다. 전국 최대 규모의 가축 도축 시설이었던 이곳은 ‘동물 학대’ ‘혐오 논란’ 등 거센 여론에 밀려 2016년 결국 철거가 결정됐다. 성남시와 가축상인회가 업무 협약을 맺은 뒤에는 20여 가게가 자진해서 개 전시 시설과 도축 시설을 없애기도 했다.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은 ‘누구도 해결 못 한 50년 숙제를 해결했습니다. 모란시장 개고기 논란 OUT’이라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런데 지난 4일, 동물 보호 단체 시위대가 ‘개·고양이 판매는 불법’이라는 피켓을 들고 모란시장 내부를 행진했다. 김건희 여사는 인스타그램에 ‘모란시장에 살아있는 개를 진열했으니 민원을 넣어 달라’는 타인의 게시 글을 공유했다가 삭제했다. 개고기 논란을 풀 첫 단추가 될 줄 알았던 이곳에서 여전히 개고기를 팔고 있다. ‘누구도 해결 못 한’ 논란의 중심, 경기 성남시 모란시장을 <아무튼, 주말>이 찾았다.
◇도축은 금지, 판매는 가능?
지난 17일 오후 1시 ‘가축 코너’라고 하는 모란시장 옆 260m 거리 일대. ‘건강원’ ‘보신탕’이라는 간판을 단 가게 30여 곳이 줄지어 영업 중이다. 가게 밖 업소용 냉장고에는 도축한 개, 염소가 내장 등을 제거한 지육 형태로 진열돼 있다. 골목 끝에는 도살된 채 갈고리에 걸린 꿩, 토끼도 있다. 이곳 업종은 구이용 고기나 탕을 판매하는 ‘식당형 업소’와 개소주나 약탕을 끓여 판매하는 ‘포장 전문점’으로 나뉜다. 점심 무렵이었지만 식당엔 손님이 최다 세 테이블, 아예 손님이 없는 곳도 있었다.
성남시와 모란가축시장 상인회가 체결한 업무 협약은 개고기 판매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 업무 협약에는 ‘개를 가두거나 도살하는 행위의 근절’이라는 내용이 있다. 도살장을 설치하거나 살아있는 개를 가두는 건 단속 대상이지만, 시장 외부에서 도축된 고기를 가져와 판매하는 건 가능하다. 30년째 A 건강원을 운영해온 이모(67)씨는 “영업을 아예 포기하도록 중단시킨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영업은 불가능한 애매한 상태로 6년이 흘렀다”며 “최근까지 공무원 6~7명이 우리 가게에 서 있다 가서 장사를 망치곤 했다”고 말했다.
성남시청 관계자는 “혐오 논란을 불러온 일부 시설을 철거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상인들의 영업 행위도 보장되어야 하므로 판매 자체를 막을 법적 근거는 없는 상황”이라며 “계도와 대화로 풀어나가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개 대체하는 흑염소와 미꾸라지
눈에 보이는 도살장을 철거하니 오히려 사각지대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B 건강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전문 도축 농장에서 가져오는 육견이 대부분이지만, 일부 가게는 지방의 이름 모를 곳에서 암암리에 떼 오는 경우도 있다. 보통 12킬로그램짜리 한 마리가 16만원이라면 그런 곳에서 가져오는 고기는 위험 수당이 붙어 단가가 더 비싸다”며 “그나마 닭과 같은 가금류는 ‘이동식 도축장’에서 동물위생시험소 검사관이 보는 아래서 도축하지만, 개는 그마저도 불법”이라고 했다.
C 식육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나온 이현규(71)씨는 “기력 없을 때마다 와서 보신탕을 먹는다. 도살장이 없어져서 보기에는 좋은데, 어디서 고기를 가져오는지 알 수 없어 한편으로는 찝찝하다”며 “한쪽에선 토끼, 꿩, 닭이 더 끔찍하게 진열돼 있는데 거기엔 왜 개보다 불만을 덜 가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업종을 전환한 가게들은 흑염소나 추어탕, 토종닭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마저 수요가 오르고 가격이 올랐다. 이씨는 “배운 게 이 일뿐인데 다른 고기라도 팔아야지 어쩔 수 있겠나. 10년 전만 해도 농장 염소 값이 킬로그램당 4500원이었는데, 지금은 1만6000원 수준. 도축비도 비싸 팔아도 개보다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낙지탕 판매로 업종을 바꾼 김용북 모란가축시장상인회장은 “장사가 잘되던 1980년대는 ‘지나가던 개도 수표를 물고 가더라’는 우스개도 있었다. 지금 매출은 과거 100분의 1 수준”이라며 “시에서 보상금 받았으니 괜찮지 않냐고 하지만, 현금이 아니라 간판이나 내부 시설물 수리 명목의 1000만원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이너스”라고 했다.
◇외국인 건설 노동자들이 단골?
개고기 수요는 점점 줄고 있다. 동물자유연대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응답자의 71.9%는 ‘개고기 먹을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모란시장을 찾는 이들은 누굴까. A 건강원의 이씨는 “주로 몸 쓰는 일을 하는 베트남, 네팔, 필리핀 국적 건설 노동자들이 찾는다. 체력 보충은 해야 하지만, 영양가 있는 음식을 직접 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복날보다는 명절 전후로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이 정점을 찍는다”고 했다.
노인 손님도 많다. D 건강원을 운영하는 김모(65)씨는 “서울뿐 아니라 충청도 광천 등지에서 먹으러 오는 단골도 있다. 먹을 것 없던 시절에 개고기 먹던 습관이 남아있는 노인들이 자주 오신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이곳까지 방문한 김모(74)씨는 “친구 셋이랑 먹으러 왔는데, 확실히 기운이 난다. 개 시장이 한창 번성하던 때보다 지금은 가게가 3분의 1로 줄었는데, 전부 사라질 때까지는 계속 먹으러 올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식품위생법상 식품에 사용할 수 있는 원료의 목록에 ‘개’나 ‘개고기’는 등재돼 있지 않다. 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민적 합의가 부족하다’며 개 식용을 금지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작년 12월 출범한 ‘개 식용 문제 논의를 위한 위원회’는 지난 4월이었던 활동 종료 기한을 2개월 연장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개 학대를 우려하는 인식은 커졌지만 막상 불법 판매 시장이나 그를 처벌하는 법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도살은 금지했지만 여전히 개고기가 판매되고 있는 모란시장이 우리 사회 축소판”이라고 했다.
B 건강원의 김씨는 38년 전 아들이 태어난 해부터 아내와 함께 가게를 운영해왔다. “시대가 바뀐 걸 압니다. 점점 개고기 찾는 사람도 줄고, 결국 사라지겠지요. 새벽 4시부터 밤까지 장사하면서 몸은 힘들어도, 백정이라는 말 들어도 열심히만 하면 잘 살고 있다 믿었습니다. 그런데 철마다 가게 앞에서 시위하는 분들한테 ‘개만도 못한’ ‘범죄자’ 소리를 들으면, 내 살아온 인생이 무너지는 기분입니다. 접어야지요. 우리 아들이랑 손자는 이렇게 안 살았으면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