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권(主權), 대통령보다 위에 있는 게 친권(親權).”
부모와 한 달간 체험 학습을 간다며 떠난 뒤 실종돼 주검으로 발견된 초등학생 조유나(10)양 사망 사건 이후 교직 사회에서 분노가 퍼지고 있다. 조양 사망 후 교육부에서 일선 학교에 “5일 이상 체험 학습을 가는 학생에 대해 담임교사가 매주 1회 학생의 안전을 확인하라”고 권고한 것이 발단이다. 번번이 의견이 엇갈린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이례적으로 같은 목소리를 냈다. ‘조양의 사망은 학교의 관리 소홀이나 부실로 발생한 사건이 아님에도 교육부가 이런 대책을 내놓은 것 자체가 마치 사건의 책임을 죄 없는 학교와 교사에게 전가하는 것’이라는 게 공통된 입장이다. 일선 교사들도 “부모가 마음먹고 자녀를 살해하고 은폐하는데 담임교사가 확인 전화 한다고 막을 수 있느냐”며 교육부의 대책이 졸속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없지 않다. “학교·교사가 아니면 가정에서 학대받거나 살해 위협을 받는 학생을 누가 찾아내고 보호하느냐”는 의문이 나오는 것. 전문가들은 “조양의 비극적인 죽음이 한국 사회의 친권에 대한 배타적 개념과 가족·공동체 붕괴, 아동 학대 예방 시스템에 또다시 거대한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교사들 “실질적 관리·조사 권한부터”
광주광역시에 살던 조양의 가족은 지난 5월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겠다며 교외 체험 학습을 신청했다. 교외 체험 학습은 학교장 승인을 받으면 학생이 가족 여행 등으로 등교하지 않아도 출석을 인정해주는 제도다. 조양 가족은 6월 15일까지 체험 학습을 하겠다고 신청했지만, 15일이 지나도 조양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부모와도 연락이 닿지 않았다. 결국 학교 측은 체험 학습 기간이 끝나고 일주일 뒤인 지난달 22일 경찰에 신고했다. 조양 가족의 생존 신호가 끊어진 시점은 지난 5월 31일. 마지막 행적이 끊어진 지 22일 만에 실종 신고가 이뤄진 셈이다.
이후 ‘체험 학습 기간 내내 조양의 실종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는 언론 보도가 이어지자 교육부는 5일 이상 체험 학습을 가는 학생에 대해서는 담임교사가 주 1회 이상 안전을 확인하라고 ‘권고’했다. 교직 사회가 반발하자 교육부는 “지난해 5월 부교육감 회의를 통해 전국 교육청에 이미 시행을 권고한 방안”이라고 밝혔다.
교사들은 “본질적 개선책 없는 전시 행정이자 졸속 대책”이라는 반응이다. 체험 학습 자체가 가족 여행 등의 목적으로 허술하게 운영되는 반면 교사에게 제대로 관리할 권한은 주지 않은 게 화근이었다는 것이다. 한 고교 교사는 “체험 학습 신청을 교사가 거부하거나 관리할 권한 자체가 없고, 설령 교사가 거부하면 학부모 민원이 강하게 들어온다”며 “부모가 ‘내 아이 내가 데려가겠다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가버리면 실태 파악은 전혀 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교사는 “세월호 사건 터지면 ‘물놀이 안전 교육 하라’하고, 일본에서 독도 망언이 나오면 ‘독도 관련 교육 하라’하고, 누가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뉴스가 나오면 ‘학교에서 심폐소생술 교육하라’는 식으로 쉼 없이 공문이 온다”며 “정부가 큰 사건만 생기면 근본 대책 없이 전시성 행정만 남발하니 교사들이 반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체험 학습 제도 보완책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사들은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친권주의’를 견제할 수 있는 교권(敎權)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작가를 겸업하는 중학교 교사 권재원씨는 “체험 학습 확인만 까다롭게 한다고 해서 작정하고 자녀를 죽이려 달려드는 부모를 누가 막을 수 있느냐”며 “부모에 대한 무제한적 신뢰에 기반한 정책이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말했다. 여러 전문가도 “적어도 미국처럼 학생 문제에 학교가 학부모를 소환하거나 조사할 권한은 있어야 학교나 교사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친권이 학대의 방패막 돼선 안 돼”
민법상 친권은 미성년인 자녀를 양육하는 양육권과 자녀의 재산 관리와 법적 권리를 대리하는 법적 대리권이 합쳐진 개념이다. 아동 학대나 가정 폭력이 벌어진 경우 가정법원이 친권을 박탈하거나 일시 정지, 일부를 제한하는 선고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친권은 한국 사회에서 부모의 사적 권리이자 절대적 권리로 통용된다. “대통령 위에 친권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 2020년 국내 아동 학대는 3만900여 건이 발생했고, 가해자의 82%는 부모였다. 아동 학대 후 사망 건수는 2016~2020년 해마다 36~43건이 발생했다. “친권에 대한 사회적 개입과 견제의 여지를 넓혀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조양 살해 사건도 범행 전까진 이상 징후가 보이지 않았지만, 범행 후 경찰 수사를 통해 뒤늦게 실마리가 밝혀지고 있다. 조양의 부모가 1억원 이상의 부채가 있고 부모 모두 우울증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친권과 프라이버시만 강조되면 이런 위험 요인을 학교·기관이 사전에 파악하고 대비하기가 어렵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친권이 천부인권으로 여겨지는 사회라 가정 내 성폭력 범죄가 발생해도 친권 박탈을 하는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의외로 많지 않다”며 “정상적인 가정의 친권은 당연히 보호받아야 하지만, 문제 있는 가정의 아동을 찾아내 보호하려면 친권에 사회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야 하고, 친권에 대한 인식도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을 넘어선 돌봄까지 가야”
조양 사건은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와 공동체 문화가 붕괴됐음을 보여주는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전문가는 “과거에는 자녀를 두고 부모가 극단적 선택을 하면 친족이 데려가서 양육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거의 다 시설로 보내진다”며 “그만큼 한국 가정들이 파편화되고 지역 공동체 간 교류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동체나 가족 간 교류가 줄어들수록 문제 가정을 미리 찾아내고 대비하는 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학교의 ‘돌봄’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는 “친권 때문에 개입할 수 없다는 소극적인 인식을 버리고 학교가 가진 기능을 확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교사만큼 아이들을 오랫동안 잘 관찰할 수 있는 주체는 사실상 없지 않은가”라며 “학교에서 교육만 한다는 인식을 넘어 ‘돌봄까지 이뤄져야 교육도 가능하다’는 전제로 시스템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배준용 주말뉴스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