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중고 매매 사이트에서 물건을 사고판 적이 있었다. 파는 사람이 올린 가격에서 10% 정도 깎아 흥정을 해본다. 깎아주면 사고 안 깎아주면 꼭 필요한 물건인지 따져본다. 팔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10% 정도 깎으리라 예상하고 가격을 올리는 식이다.
가장 잘 산 것은 벽걸이형 에어컨이었다. 외관과 성능이 최상급인 중고 에어컨을 5만원에 살 수 있었다. 물론 에어컨을 가지러 인천까지 가야 했고 설치비가 15만원가량 들었다(그래도 신품 사는 것보다는 훨씬 쌌다). 기타를 다시 쳐보려고 기타 스탠드와 보면대, 발 받침대도 중고로 샀다. 몇 번 뚱땅거리다가 시들해졌으니 싸게 샀어도 결국은 헛돈 쓴 셈이다.
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중고 거래 앱이 생기면서 중고 시장 규모는 어마어마해졌다. 당근마켓 가입자 수가 3000만명을 넘고 1년 거래액이 1조원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중고 시장이 아니라 대안 시장이다. 중고 물건으로도 얼마든지 과소비가 가능할 정도다. 당근마켓 들여다보는 사람이 페이스북 사용자보다 많다니 말이다.
오래 전 미국에서 1년 살았을 때 주말마다 야드 세일(yard sale) 하는 집들을 돌아다녔다. 중고품을 집 마당이나 차고 앞에 늘어놓고 판다. 동네 신문에 광고가 나기도 하고 길거리에 포스터가 붙어있기도 했다. 물건 가격은 25센트부터 1달러짜리가 대부분이고, 비싸 봐야 5달러 내외였다. 어떤 집은 비닐봉투를 하나씩 주고 아무 거나 가득 담아 전부 5달러에 가져가라고도 했다. 그때 1달러 주고 샀던 나무 필통은 아직도 갖고 있을 만큼 튼튼하다.
중고 거래 앱이 아무리 활성화돼 있어도 직접 물건을 보고 살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물건을 팔려면 사진을 찍어 올리고 이런저런 문의에 대답해줘야 한다. 너무 자잘한 물건은 사고팔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미국처럼 아파트 한쪽에서 중고품을 팔았다간 민폐를 끼칠 가능성이 높다.
동네 기반 중고 장터야말로 구청이나 주민센터 단위로 해 볼만한 서비스다. 월 1회 정도 구청 강당이나 주민센터 주차장 같은 곳에 중고 장터를 열어 주민들이 물건을 사고팔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핀란드에서는 누구나 열흘에 3만원가량을 내면 벼룩시장에 작은 부스를 차릴 수 있다고 한다. 부스를 지킬 필요도 없이 물건마다 바코드를 붙여 마지막 날 매출액을 정산하면 그만이다. 우리 동네 주민센터에 그런 장터가 열리면 나부터 돗자리를 깔 생각이다. 중고 거래 앱에 올리기엔 애매하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아까운 물건들이 산더미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