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가을, 구로공단의 야학에 다니는 스무 살 김영호(설경구)는 모임 ‘봉우회’의 친구들과 계곡으로 소풍을 간다. 그 자리에서 박하사탕 포장일을 하는 순임(문소리)을 만나고 서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다. 순임은 ‘좋아하려고 한다’며 박하사탕을 건네고 영호는 ‘박하사탕을 좋아한다’며 받아 먹는다. 그리고 강가에 누워 행복에 겨운 눈물을 흘린다.
1980년 5월, 순임이 전방 사단의 이등병인 영호에게 면회를 간다. 하지만 계엄령 탓에 면회가 불가능한 가운데, 영호의 사단은 갑자기 출동 명령을 받는다. 채 적응도 못 한 이등병인 영호는 급히 군장을 싸다가 찬합 속에 모아 놓은 박하사탕을 쏟고 선임병에게 질책을 받는다. 순임이 편지에 한 개씩 넣어 보냈던 박하사탕이었다. 사단 병력이 트럭에 실려 부대를 나서는 길에 면회를 못 하고 돌아서는 순임이 걸어가고 있지만 영호는 제대로 보지 못한다. 그렇게 광주에 투입된 영호는 다리에 총을 맞고 낙오되는데, 이때 쏜 총알이 여고생에게 맞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사람을 죽이고 만 것이다.
1984년 가을, 신참 형사인 영호에게 순임이 물어물어 찾아온다. 영호는 시국사범에게 고문을 가하는 선배 형사들을 보고 처음에는 적응을 못 하지만 점차 그들과 닮아간다. 그런 가운데 애써 찾아온 순임을 일부러 위악적으로 대해 내치고, 자신을 짝사랑해온 동네 가겟집의 홍자(김여진)와 결혼해 버린다. 그리고 1987년 봄, 우연히 목욕탕에서 발견한 운동권 학생을 체포 및 고문한 끝에 수배자의 행방을 알아내고 군산으로 향한다. 하지만 얼이 빠져 잠복근무를 통해 찾은 수배자도 알아보지 못한다. 인격에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1999년 봄, 마흔의 영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경찰을 그만두고 가구점을 차렸지만 사기를 당한 데다 IMF 사태까지 겹쳐 집과 재산을 잃고 아내와는 이혼했다. 그리하여 유일하게 남은 재산인 자동차로 정처 없이 떠돌다가 1979년 함께 소풍을 갔었던 봉우회가 20년 만에 다시 모인다는 소식을 라디오에서 듣는다. 이미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영호는 가진 돈을 다 털어 총을 구해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자신에게 사기를 친 이를 찾아가 총격을 시도하지만 역시 성공하지 못한다.
그런 영호에게 첫사랑 순임의 남편이 찾아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아내가 만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전한다. 망설이던 끝에 영호는 눈치 없게도 박하사탕을 사들고 면회를 가지만 순임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이다. 남편은 오래전 순임이 선물했지만 물리친 카메라를 다시 영호에게 건네지만, 그는 헐값에 팔아 넘긴 돈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그리고 사흘 뒤, 영호는 봉우회의 20주년 모임 야유회에 찾아오지만 절규에 가까운 노래와 살풀이에 가까운 춤으로 분위기를 망치다가 철로에 올라가 달려온 기차를 마주하며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친다.
영화에 등장하는 음식은 대체로 식욕을 돋우지만, ‘박하사탕’(2000)은 사정이 좀 다르다. 하필 달콤하고도 시원한 박하사탕이 비극의 소재라니! 영화를 보면 먹던 사탕도 죄책감에 뱉고 싶어진다. ‘탕(糖)’자를 공유하므로 ‘사탕=설탕’이라 여기기 쉽지만 사실 둘은 화학적으로 다르다. 설탕을 녹이면 걸쭉한 액체가 되지만 굳으면 딱딱하고 퍼석해 맛이 없다. 따라서 물엿 등의 전화당(轉化糖·inverted sugar)을 더해 가공성을 높이고 질감을 개선시킨다.
전화당은 자당, 즉 설탕을 가수분해해 만든 포도당과 과당의 등량 혼합물로 달지는 않지만 강한 환원력을 지니고 있어 식품 가공에 많이 쓰인다. 한식의 볶음이나 조림 등에서 단맛보다 촉촉함을 불어넣는 데 많이 쓰이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시중의 박하사탕은 대체로 설탕이 60퍼센트에 나머지가 물엿이고 박하향은 0.05퍼센트 이하로 미량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박하사탕은 ‘옛날 박하사탕’으로 검색해야 제대로 찾을 수 있다. 공기를 많이 불어넣어 가볍고 아삭하게 씹히는 게 엿과 흡사하다. 인터넷 오픈마켓에서 100그램에 500원 이하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