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서트요? 나도 누구보다 하고 싶은 사람이긴 한데. 아휴 몰라, 회사가 뒤숭숭해 가지고.”

지난 13일 새 앨범 ‘킬러’ 발매를 기념해 라이브 방송을 하던 그룹 ‘샤이니’의 멤버 키는 “콘서트를 열어달라”는 팬들의 요청에 이같이 말했다.

현재 대중음악계는 “뒤숭숭하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가수도, 팬도, SM엔터테인먼트도, 하이브도 마찬가지다. 방탄소년단(BTS)의 소속사 하이브가 SM 1대 주주인 이수만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대부분을 인수한다고 밝힌 다음 날, SM 블라인드 앱에는 이 같은 글이 올라왔다. “선생님, SM의 역사를 함께한 임직원들의 피와 눈물, 허탈함을 4228억원과 맞바꾸시고 지금 행복하십니까?” ‘하이브+이수만’ 대 ‘카카오+현 경영진’으로 나뉜 직원 투표에서는 후자를 지지하는 쪽이 85%로 압도적이었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하이브 박지원 대표는 13일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가졌다. “SM의 레거시(유산)를 존경한다. 독립성을 보장한다. 이수만 경영도 없다.”

이제 봄이 오면 K팝 초석을 닦은 1세대 기업 SM은 하이브 혹은 카카오의 품에 안긴다. SM이 파산해서가 아니라, 매출 7015억원대(2021년 기준) 기업이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경쟁사로 넘어가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

◇네이버-카카오의 플랫폼 전쟁이 불씨

시작은 네이버와 카카오의 플랫폼 대전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진 양대 플랫폼 회사는 팬덤이 강한 연예인 IP(지식재산권)가 필요했다. 네이버는 브이라이브를, 카카오는 멜론과 카카오엔터를 운영 중이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 무렵 빅히트에서 하이브로 이름을 바꿔 2020년 10월 상장한 방시혁 의장이 등장했다. 그는 자체 팬커뮤니티인 ‘위버스’를 네이버 같은 플랫폼 회사로 키우고 싶었다. 여기서 서울대 86학번인 이해진 네이버 GIO와 91학번인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손을 잡는다. 네이버의 브이라이브를 위버스에 넘기고, 하이브의 IP 사업은 네이버와 함께하는 것이다. 현재 위버스의 2대 주주도 네이버다. 양현석의 YG엔터테인먼트도 ‘하이브-네이버 연합’에 합류한다.

급해진 건 카카오였다. 플랫폼은 규모의 산업이다. 가장 큰 곳이 모두를 먹는 승자독식(勝者獨食)이다. 이미 아이유가 있는 이담엔터테인먼트, 걸그룹 아이브를 배출한 스타쉽 등이 있었지만 팬덤 화력에서는 역부족이었다. 카카오는 2021년 유희열이 있는 안테나, 2022년 박재범의 모어비전 등의 인수와 투자를 진행하며 세를 늘린다. 2022년 3월에는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이 물러나고 투니버스·CJ ENM 등에서 30년 넘게 콘텐츠 사업을 한 김성수 대표를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앉힌다. 누가 봐도 콘텐츠 사업에 무게 중심을 두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2023년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상장을 위해선 마지막 한 개의 퍼즐이 필요했다.

◇행동주의 흙수저 이창환의 등판

SM은 단순한 연예기획사가 아니다. 엑소 등의 아이돌그룹뿐 아니라 계열사 키이스트와 SM C&C를 통해 유해진, 강호동 같은 스타들을 보유한 데다 ‘효리네 민박’ ‘장사의 신’ 등 예능과 드라마도 제작하는 거대 콘텐츠 회사다. 2020년 2월엔 ‘디어유’라는 팬 플랫폼을 열고 상장까지 완료했다. ‘디어유’는 JYP엔터테인먼트도 지분을 23.3% 갖고 있다.

플랫폼 간의 대전 속에 SM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이수만 총괄프로듀서가 자신의 지분 18.53%를 아들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팔겠다며 시장에 내놓는다. 이 지분을 갖기 위해 하이브, CJ, 카카오가 뛰어들었다. 당시만 해도 이 총괄은 “하이브에는 팔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첫 매각 진행은 CJ와 6300억원에서 진행됐지만 김범수의 카카오가 7900억원을 부르며 분위기는 바뀌었다. 그러나 2022년 7월 카카오 이사진의 반대로 협상가는 6000억원으로 쪼그라들고, 지분 협상은 진전 없이 흘러갔다.

이때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가 등판한다. 이 대표는 홀어머니와 생활보호대상자로 살면서도 18세 때 KBS ‘퀴즈! 대한민국’에서 최연소 영웅으로 등극해 화제를 모았다가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인물이다. 이후 미국 3대 사모펀드 중 하나인 KKR을 거쳐 행동주의 펀드 ‘얼라인파트너스’를 창업했다. 그리고 2021년 9월 처음 SM 지분을 사들인다.

이 대표가 SM 지분을 사들이기 시작한 건 K팝의 확장 가능성과,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SM 주가 때문이었다. 현재 4대 연예기획사를 매출순으로 나열하면 하이브>SM>YG>JYP 이지만, 영업이익과 주가순으로 하면 하이브>JYP>SM>YG 순이다. 이 대표는 SM의 저평가 이유가 ‘오너 리스크’, 즉 이수만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정보 공개를 통해 이수만의 개인 회사 ‘라이크 기획’이 SM 매출의 6%를 떼어가고, 2092년까지 음원 수익의 로열티 6%를 이수만 개인이 수령한다는 사실들을 밝혀낸다. 매출의 6%는 영업이익의 40%에 달하는 금액. 이 과정에서 SM 직원들의 배신감이 컸다고 한다. 여기에 걸그룹 ‘갓 더 비트’의 실적 저조, 에스파의 ‘걸스’ 앨범 실패 등으로 이수만·유영진 등 기존 SM 사단의 프로듀싱 능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자 이성수·탁영준 등 SM 현 경영진은 이수만이 없는 SM 3.0을 준비한다. 카카오 측은 현 경영진으로 협상 상대를 바꿨고, SM의 경영권과 독립성을 지켜주는 조건으로 신주 및 전환 사채 발행을 통해 2대 주주로 들어오게 된다.

치료차 미국에 있었던 이수만은 자신이 배제되는 상황을 전혀 몰랐다. 급히 귀국한 이수만은 최대 주주의 동의 없이 결정된 신주 발행 및 전환사채 발행은 금지라며 가처분 신청에 들어간다. 그러나 가처분 신청 결과는 신주·전환사채 발행일인 다음 달이 돼야 나온다. 3월에는 이창환 얼라인 대표가 새 기타비상무이사로 영입되는 주주총회도 열린다. 이미 흐르기 시작한 강물은 막을 수 없는 법. 여기서 이수만은 아예 물줄기를 틀어버리기로 결심한다. 라이벌 방시혁에게 자신의 지분 중 3%만 남기고 14.8%를 4228억원에 넘긴 것이다.

◇하이브 공화국? K팝 다양성 잃을까 우려

현재 하이브는 SM 총지분의 39.8% 확보를 목표로 주당 12만원에 공개 매수에 나섰다. 카카오는 가처분 신청 관련 법원의 판결을 기다려야 하지만 영향권 행사를 위해선 추가 매수에 들어가야 한다. 이제부터는 하이브와 카카오의 지분 확보 싸움이다.

두 공룡의 전쟁은 K팝의 지각 변동을 예고한다. 그동안 이수만 지분을 두고 CJ와 카카오가 난항을 겪은 건 프로듀서권과 경영 보장 문제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 총괄이 방 의장에게 지분을 예상보다 싼 가격에 판 것을 두고 ‘두 가지는 보장받은 것’이란 설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박지원 하이브 대표는 “이수만의 경영 참여나, 프로듀싱 참여는 없다. 로열티도 더는 가져가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그는 “SM의 독립성을 보장하겠다. 하이브는 이미 멀티 레이블 체제를 증명해냈다”고도 했다.

현재 하이브는 2019년 ‘쏘스뮤직’ 인수를 시작으로 2020년 ‘플레디스’, 2021년 저스틴 비버가 있는 ‘이타카’, 최근엔 힙합 가수 릴 베이비가 있는 ‘QC’ 등을 인수해 멀티 레이블로 운영 중이다. 만약 하이브가 SM 인수에 성공한다면 K팝 시장은 2022년 기준으로 음반 판매 상위 15개 가수 중 9개가 하이브 계열이 된다. 특히, 팬덤이 강해 IP 사업이 쉬운 보이그룹 중에서는 역대 상위 20개 앨범 중 19개가 하이브 계열이다. 그야말로 ‘하이브 공화국’이다.

SM과 하이브가 합쳐질 때의 장점은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는 거대 레이블의 탄생이다. CNN은 “글로벌 빅3 주요 레코드 레이블인 소니, 유니버설, 워너뮤직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반대로 ‘한국판 자니스 사무소’가 될 수도 있다. J팝이 잘나가던 시절, 기타가와 히로무가 1962년 세운 ‘자니스 사무소’는 보이그룹 ‘스맵’ ‘킨키 키즈’ ‘V6′ 등을 모두 가지고 1990년대 방송계와 연예계를 휘두르던 권력이었다. 거대해진 권력은 2010년대 들어 내부 파벌 싸움이 발생하고, 유튜브 등 뉴미디어를 따라잡지 못한 상황에서, K팝이 세력을 넓히자 힘을 잃기 시작했다. 익명을 요구한 음악계 관계자는 “거대해진 하이브에 누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겠느냐”며 “음악이 문화임을 잊은 채, 돈으로만 보는 현재 시각들이 안타깝다. 가장 중요한 건 아티스트와 팬. 다양한 기획사들이 경쟁하며 파이를 키우던 K팝이 힘을 잃을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