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강대교 중앙에 노들섬이 있다. 지난 14일 오후 5시. 버스 승객의 절반이 노들섬 정류장에서 하차했다. 발레 ‘백조의 호수(Swan Lake)’를 보러 온 시민들이었다. 객석에 입장하자 유니버설발레단(UBC) 문훈숙 단장이 발레 동작을 영상으로 해설해 주고 있었다. 무대 뒤로 63빌딩 등 서울의 고층 빌딩과 아파트들이 보였다.
지난 14~15일 노들섬 잔디마당에서 ‘백조의 호수’를 공연했다. 서울문화재단에 따르면 매회 1800석을 준비한 이 무료 발레는 온라인 예약으로 30초 만에 전 석이 매진됐다. 주홍빛 노을이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가운데 오후 6시가 되자 무대막이 좌우로 열렸다. 올해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은 UBC 수석무용수 강미선을 비롯해 하얀 튀튀를 입은 백조들이 댄스 플로어에 등장했다.
‘백조의 호수’는 웅장한 차이콥스키 선율과 섬세한 백조의 날갯짓이 일렁이는 클래식 발레다.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오데트 공주(강미선)가 주인공. 사랑만이 저주를 풀 수 있다. 숲속 호숫가에서 그녀를 보고 반한 지그프리트 왕자(이현준)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하지만 악마 로트바르트의 딸 오딜(홍향기)이 무도회에서 왕자를 홀린다. 오데트의 절망도 춤이 된다.
비 예보가 있었는데 하늘이 도왔다. 자주 지나가는 열차 소음은 공연이 시작되고 음악이 차오르자 희미하게 멀어졌다. 집중을 방해하지 않았다. 어두워지자 야외 무대의 운치가 더 살아났다. 차가운 강바람은 입장할 때 나눠준 핫팩(100g)으로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습기 때문에 무용수들이 미끄러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틀 내내 문제없이 끝났다.
서울시는 한때 오페라하우스를 지으려던 노들섬을 세계적 명소로 꾸미는 건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토머스 헤더윅의 ‘사운드스케이프’, 김찬중의 ‘노들링’ 등이 후보로 알려졌다. 영국 유명 건축가 헤더윅은 “한강은 파리 센강이나 런던 템스강보다 훨씬 넓고, 노들섬은 강남과 강북을 잇는 자연 공간”이라며 “한복판에 그런 휴식처 같은 섬을 가진 대도시는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했다.
명작은 시대와 국경을 초월하는 문화 공용어와 같다. 날씨와 교통 등이 해결해야 할 과제지만 발레 ‘백조의 호수’로 한강 예술섬 프로젝트의 가능성과 수요를 가늠할 수 있었다. 21~22일 오후 6시에는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가 이어진다. 바리톤 안대현이 피가로, 소프라노 박혜상이 로지나로 노들섬에서 관객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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