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항아리와 시'. 미당 서정주의 시가 적혀 있다.

“저는 시방 꼭 텡 비인 항아리 같기도 하고, 또 텡 비인 들녘 같기도 하옵니다. 하눌이여 한동안 더 모진 광풍을 제 안에 두시든지, 날으는 몇 마리의 나비를 두시든지, 반쯤 물이 담긴 도가니와 같이 하시든지 뜻대로 하옵소서. 시방 제 속은 꼭 많은 꽃과 향기들이 담겼다가 비여진 항아리와 같습니다.”

황야를 헤매던 봉두난발의 리어왕이 잠깐 제정신이 돌아왔을 때쯤 입속으로 중얼거렸을 법한 시다. 신간 ‘나만의 미당시’(은행나무)를 펼쳤다가 미당 서정주(1915~2000)가 지은 ‘기도1′을 오랜만에 다시 읽는다. 20대부터 80대까지 시인 서른 명이 하나씩 고른 미당 시와 해설이 담긴 에세이. 시인 김사인은 ‘기도1′에 대해 이렇게 풀이했다.

“운명에 떠밀려 난파한 화자가 하눌이여 마음대로 합소서, 이제 저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아무것도 아니나이다, 맘대로 합소서, 그 투명해진 탄식이 손에 잡힐 듯하다. ‘텅 비인’이 아니고 ‘텡 비인’이다. 빈 공간을 돌아 울리고 나오는 바람 소리의 허전한 여운이 있다.”

미당 서정주(1915~2000).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조선일보DB

‘푸르른 날’을 선택한 시인 정현종은 “그리움의 밀도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보다 더 잘 쓸 수 없게 노래해서 사람을 까무러치게 한다”고 극찬했다. 미당시는 “그리운 사람을 다시 만나는 가슴 벅찬 행복감”(마종기)이고 “시 쓰는 일이 힘에 부칠 때 펼치는 시”(고명재)이며 “머릿속에 불이 들어오는”(이병률) 순간이다.

서정주의 삶은 우리 산천처럼 굴곡이 많다. 일제강점기 가미카제 특공대에 투입된 조선인 청년을 미화한 ‘마쓰이 오장 송가’를 짓고 ‘다쓰시로 시즈오’로 창씨개명했다. 그런 행적 때문에 2009년 발표된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포함됐다. 비판과는 별개로 미당의 문학적 가치를 부정하기는 어렵다. 훌륭한 시인이라고 해서 인간적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남호 고려대 교수는 “잠실운동장만 한 잔디밭에 잡초 몇 포기가 있다고 해서 그 잔디를 다 들어낼 수는 없다”며 “미당 시를 둘러싼 정치적 현실은 어둡지만 그래도 나는 미당 시가 있어서 행복하다”고 했다.

기구한 근현대사 속에 많은 인물이 엎어지고 자빠지고 다시 일어서며 부침해 갔다. 문학을 흑백으로 재단하지 말자. 김사인 시인 말마따나 “좋은 시는 좋은 시대로, 불편한 시는 불편한 시대로 이제 독자와 역사에 맡길 일”이다. 누군가의 떳떳함이 우리 모두의 자랑이라면, 누군가의 부끄러움과 상처 또한 ‘우리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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