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만나는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는 성공한 먹방이다. 볼 때마다 침이 고이지만 옥에 티가 있다. 먹기는 잘 먹는데 마실 줄을 모른다. ‘고로상’ 마쓰시게 유타카가 술을 잘 못하기 때문이다. 외근 중에 식사를 하니 음주할 여유도 없다. 좋은 안주를 앞에 두고 우롱차를 마시는 그를 보다 못해 냉장고 문을 열곤 한다.
영국에는 ‘모먼트(Moments)’라는 이름의 비스킷이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에세이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이 비스킷 공장을 방문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준다. 디자인 책임자는 그에게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라고 했다. 밀가루 반죽으로 소비자의 ‘내 시간’에 대한 갈망에 응답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모먼트는 비스킷의 크기와 형태, 포장과 이름으로 그 계획을 실현했다.
영화 ‘심야식당’도 음식과 이야기로 관객을 위로했다. 일본 도쿄의 번화가 뒷골목에 자정부터 아침 7시까지 문을 여는 조용한 밥집. 이름이 심야식당이다. 메뉴는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 맥주, 사케, 소주뿐이지만 주인장 마스터(고바야시 가오루)는 손님이 원하는 요리를 가능한 한 만들어 준다. 허기와 마음을 달래주는 음식과 함께 손님의 이야기가 풀려 나온다.
음식에는 ‘먹는 철학’이 담겨 있다. 사물을 이해하는 가장 직접적인 행위인 먹기를 통해 우리는 그것에 다가간다. 몸이 섭취하면서 마음도 영양분을 흡수한다. “맛있다” 하는 음식은 내 정신이 놓치고 있는 결핍에 대한 단서를 주는 셈이다. 그런데 요리가 뛰어나도 맛의 감동을 전하는 것은 역시 먹는 사람의 몸짓과 표정이다. ‘고독한 미식가’와 ‘심야식당’ 등이 반향을 일으킨 이유도 ‘잘 만드는’ 일보다 ‘잘 먹는’ 일, ‘잘 듣는’ 일에 있을 것이다.
음식은 단순한 연료가 아니다. 어느 날의 심리적 수요에 대한 응답이고 기울어진 영혼의 균형을 회복하려는 행위일 수도 있다. ‘치유의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종류의 음식은 라벨에 적힌 영양적 가치뿐만 아니라 먹는 사람의 기억과 경험, 바람 등 심리적 가치라 부를 만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고독한 미식가’는 고독하지 않다. 대사 없이도 시청자와 넓고 깊게 소통한다. 우리 대부분은 달변이 아니고 말로 옮기기 어려운 것을 식탁에서 음식으로 드러낸다. 음식은 음악처럼 매우 직접적이다.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중요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다. 말할 수 없는 것, 그렇다고 침묵할 수도 없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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