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의가 바뀐다는 것, 인생 주기가 달라졌음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주민등록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가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고 지난달 행정안전부가 공식 인증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2017년 고령사회가 된 지 7년 만에 초고령사회에 도달한 것이다. UN 세계 인구 자료에 따르면, 2050년 한국은 홍콩에 이어 세계에서 둘째로 고령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저귀가 급부상하고 있다. 나이가 들면 아이가 되므로. 국내 성인용 기저귀 공급량은 이미 유아용 기저귀를 뛰어넘었다. 매출은 5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세. 출산율이 급격히 줄자 기저귀 업체마다 성인용에 사활을 걸고 있다. 때마침 지난달 한국소비자원이 성인용 기저귀 제품 평가 결과를 내놨다. 관계자는 “소비자 관심도 설문 결과 성인용 기저귀가 높은 순위를 차지해 조사를 진행했다”며 “급속한 고령화에 따른 필요성 증가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소비자원이 파악한 현재 국내 시판 중인 성인용 기저귀만 80여 종. 퇴근길, 근처 마트에 가서 성인용 기저귀를 구매했다. 이심전심, 이 기사는 그것을 입은 채 작성됐다.

◇유아보다 성인이 더 찾는다

일본 도쿄에서 지난 2008년 열린 성인용 기저귀 패션쇼 장면. 놀라운 사실이지만, 더 일찍인 2002년 대한펄프(현 깨끗한나라)가 판매 촉진을 위해 서울 여의도 유람선에서 야외 성인용 기저귀 패션쇼를 개최한 바 있다. /AFP

뜯어보니 예상과 달리 회색이었다. 속옷처럼 선호도 조사를 거친 색상이라고 한다. 기저귀 뗀 지 어언 30여 년, 거울 앞에서 다시 깨닫는다. 얇은 천 쪼가리 하나로 된바람을 견디던 둔부가 폭신한 스펀지에 안착할 때, 오래 잊고 있던 보호받는 느낌. ‘아기공룡 둘리’에 나오는 희동이가 된 기분. 다만 무게중심이 다소 밑으로 처지는 까닭에 뒤태가 걱정되기는 했다. 그 위에 청바지를 입어봤다. 약간 습기가 차기는 해도 기저귀의 흔적은 드러나지 않았다. 흡수량만큼 ‘스타일’을 강조한 기저귀. 지인과의 식사 장소에도 입고 나가봤다. 전혀 눈치채지 못한 눈치였다.

이제 어른의 속옷이 돼가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유아용과 성인용 기저귀 공급량 차이는 2019년 47대53, 2020년 42대58, 2021년 38대62, 2022년 35대65로 계속 벌어지고 있다. 식약처 수입 정보 마루에 따르면, 2023년 성인용 기저귀 수입량은 2만5532톤, 유아용은 2만2954톤으로, 그 격차가 전년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세계적 현상이다. 지난해 시장조사 분석 기업 테크나비오(Technavio)는 2024~2028년 글로벌 성인용 기저귀 시장 규모가 25억6000만달러(약 3조 7668억원) 성장할 것으로 추산했다.

내가 기저귀 찬 사실을 알리지 말라. 여전히 입 밖에 내기 민망한 말. 요실금은 30~40대로 내려가고 있다. 기저귀 포장지를 살펴보니 ‘웃음도 재채기도 운동도 자신 있게’라고 쓰여 있다. 지난 2017년 조사 결과 성인 여성 1000명 중 208명이 요실금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 중 30대 여성은 26명으로, 70세 이상(52명)의 절반 수준이었다. 인식 개선 노력이 이어지는 이유다. 이를테면 건강 위생용품 기업 유한킴벌리는 주력 성인용 기저귀 모델로 40대 여배우 오윤아를 발탁했다. ‘노인용’ 이미지를 희석하기 위해서였다. 진열대를 유아용품에서 여성용품으로 재배치하고, 계절별·성별에 맞춘 제품도 별도 출시했다. 관계자는 “1993년 처음 시장을 개척할 당시만 해도 환자용으로 소비가 제한적이었지만 액티브 시니어가 늘면서 제품군도 다양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종류 200여 종… 기저귀 패션쇼까지

서울의 한 대형 마트 성인용 기저귀 매대에서 한 여성이 제품을 고르고 있다. /김용재 영상미디어 기자

수퍼맨처럼 기저귀를 바깥에 차고 경쾌하게 걷는다. 검은색 쫄쫄이 옷에 흰 기저귀, 무대에서 팝송에 맞춰 파워 워킹을 선보이는 모델들. 신축성을 보여주려 입고 있던 기저귀를 있는 힘껏 찢는 퍼포먼스까지. 2008년 일본 도쿄에서 기저귀 패션쇼가 열렸다. 성인용 기저귀 및 패드 170개 제품을 선보이는 행사. 배설 케어 단체 무쓰키안 측은 “사람들이 기저귀를 유쾌한 방식으로 바라보기를 바랐다”면서 “용품일 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 단체는 개인 특성에 따른 기저귀 추천 및 의료·식사 등을 조언하는 ‘기저귀 피터’ 자격증(1·2·3급)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기저귀는 단순한 소모품이 아닙니다. 생활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상의 피부에 더 밀착되고 있는 기저귀. 노인 선진국 일본의 경우, 2011년부터 성인용 기저귀 판매량이 유아용을 앞질렀다. 종류만 200여 종에 달한다. 일본 내 점유율 34%를 차지하던 기저귀 생산 기업 오지네피아는 지난해 9월부터 실버 기저귀에 집중하겠다며 내수용 유아 기저귀 생산을 중단해버렸다. 돈 되는 곳에 더 힘쓰겠다는 것이다. 2030년 일본 성인용 기저귀 시장은 2019년 대비 35.2% 증가한 1조944억엔(약 10조1590억원) 규모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일본의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29%를 차지하고 있다.

숫자로만 보면 고령 인구 최다 국가는 중국이다. 2차 베이비붐 세대가 고령층에 진입하면서 실버 시장 성장률이 가장 클 것으로 예견된다. ‘제14차 5개년(2021~2025년) 계획’에서 고령자 사업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한 이유다. 그러나 상상해보라. 약 3억명의 중국인 할머니·할아버지가 대륙 전역에서 버려대는 기저귀를. ‘재활용’이 필요하다. 마침 일본 최대 기저귀 제조사 유니참이 지난해 재활용 종이 기저귀를 일반 출시했다. 수거함을 설치해 모은 오염된 기저귀를 오존으로 살균·표백·탈취한 뒤 재가공한 기저귀. 유니참 측은 “착용감은 기존 기저귀와 별반 차이가 없다”고 했다.

◇스마트폰 연동 기저귀… ‘에이지 테크’ 부상

기저귀에 부착한 센서로 오물을 감지해 기저귀 교체 시점을 스마트폰으로 알려주는 IT 제품 '맥스'. /모닛

에이지 테크(Age Tech·고령 친화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이달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는 특별한 기저귀가 시선을 끌었다. 배터리가 필요 없는 스마트 기저귀. 일본 반도체 기업 아사히 카세이가 공개한 시제품이었다. 기저귀 안에 설치된 전극이 소변을 감지하면 소변 내 수분이 300㎷(밀리볼트)의 전압을 생성하고, 초저전력 부스트 컨버터가 이를 증폭하면 송신기가 감지해 기저귀 교체 시그널을 보내주는 제품이다.

국내에서도 여러 스타트업이 혁신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 사내 벤처로 시작한 스타트업 모닛 역시 대표 주자. 소형 센서를 기저귀에 부착하면 용변이 묻었을 때 AI(인공지능)가 오염도를 분석해 이를 휴대폰 앱으로 알려주는 스마트 기저귀 ‘맥스’를 내놨다. 처음엔 유아용으로 개발됐으나 성인용으로 확장된 사례다. 한국 지능정보 사회 진흥원은 최근 현황 보고서를 내 “에이지 테크 산업 규모의 연평균 증가율은 23%이며 세계경제의 8% 이상을 차지하는 블루 오션으로 부상할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고령 인구의 지출 및 연간 소비 성장률이 아시아에서 매우 높은 국가인 만큼 실버 경제 확산 대응이 요구된다”고 했다.

◇콘서트 갈 때도? 품절입니다

미국 음료 회사 리퀴드데스와 성인용 기저귀 브랜드 디펜드가 협업해 내놓은 ‘핏 기저귀’(Pit Diaper). 장시간의 콘서트 관람을 위한 용품이다. /리퀴드데스

화장실 갈 시간이 없을 때도 기저귀는 요긴하다. 필리버스터를 위해 주호영 의원 등이 국회에서 기저귀를 착용했던 것처럼. 지난달 미국에서는 장시간 콘서트 관람을 위한 기저귀 팬티가 출시됐다. 음료 회사 리퀴드데스와 성인용 기저귀 브랜드 디펜드가 협업한, 이름하여 ‘핏 기저귀(Pit Diaper)’. 가격이 75달러(약 11만원)로 결코 저렴하지 않음에도 초도 생산 물량이 모두 소진됐다. 실제로 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팬들이 그의 공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기저귀를 차고 관람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일리 있는 상품인 셈이다.

다만 이 같은 기저귀 인구 증가에도 기저귀 갈 공간은 태부족이라는 지적, 대비가 필요한 지점이다. 먹고 싸는 고민 앞에 예외인 사람은 없을 것이기에. 기사를 마무리한 뒤 기저귀를 벗었다. 착용 사실도 잊고 있던 보송보송한 기저귀, 동그랗게 말아 휴지통에 넣으며 생각한다. 하루치 체험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매대 앞을 서성이게 될지 모를 언젠가의 미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