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중에 아사히 맥주에 빠진 사람이 있다. 전에는 독일 맥주를 좋아했지만 요즘에는 아사히 특유의 알싸한 맛에 빠져 있다나? 그는 한국에서 마실 수 있는 캔맥주에 한해 그렇다는 말을 덧붙였다. 독일에서 마시는 독일 맥주는 여전히 몹시 좋아한다며. 특히나 고제나 쾰슈, 알트비어를 좋아한다고.
아사히의 뭐가 그리 좋냐고 물었더니 ‘크리스피(crispy)’ 한 맛이 좋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기가 마셔본 맥주 중에 이런 크리스피 한 맛은 아사히밖에 없다며. 함께 삿포로를 마시다가 아사히의 크리스피 한 맛 타령을 해서 좀 얼떨떨했다. 또 난데없이 삿포로는 아저씨 맥주라고 비난하는 게 아닌가? 마른 오징어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하도 열띠게 말해 삿포로에 크리스피 함이 덜한 것 같기도 했지만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아, 아사히에서는 눈 밟는 느낌이 난다고도 말했다. 그는 맥주 한정 특급 미식가인가?
크리스피라. 이건 한국 음식에 없는 맛이다. 뭐라고 번역하기도 그렇다. ‘바삭바삭한’ ‘아삭아삭한’이라는 뜻으로 주로 감자칩이나 베이컨 같은 얇은 고형 음식에 쓰는 말이라서. 아사히의 크리스피 함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가 ‘왜 무알코올 맥주에는 크리스피 한 맛이 없지?’라는 답답함이 일었다.
4년 전이었나, 겨울밤의 무알코올 맥주에 대해 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무알코올 맥주의 미덕에 대해 이렇게 썼다. “겨울밤 실내에 고여 있는 텁텁함을 씻어내는 데 이토록 훌륭한 자가 처방은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무알코올 맥주를 즐기고 있다. 변한 것은, 4년 전보다 맛있는 무알코올 맥주를 먹게 되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산이라 신선한 맥주를 마실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이 정도면 그래도 마시겠다’가 그때의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감상이라면 ‘웬만한 맥주보다 훨씬 맛있다’가 지금 내가 마시는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평가다.
내가 요즘 쟁여두는 무알코올 맥주를 N이라고 하면, 4년 전에는 내 무알코올 맥주 음주 생활에 N이 없었던 것이다. N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맛에 눈감지 않아도 되는 무알코올 맥주를 즐기게 되었다. 하지만 어디 가서 무알코올 맥주를 즐긴다거나 N이 없으면 마음이 초조하다거나 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무알코올 맥주를 마신다고 하면 돌아올 반응이 충분히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슨 맛으로 먹어? 먹을 수 없는 맛이던데? 물이 낫지 않아? 등등.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면 된다. 사람을 미워하지 않기 위한 나의 오래된 자가 처방(및 셀프 멘탈 케어).
그런데 크리스피 함 때문에 아사히를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무알코올 맥주 생활에 뭔가가 빠져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니… N 맥주의 풍성한 거품과 부드러운 목 넘김, 풍성한 맛을 좋아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는. 한국에서 취할 수 있는 무알코올 맥주의 세계란 극히 제한적이라 맛을 선택할 자유까지는 없다는 걸 말이다. 필스너와 바이젠, 골든 에일과 스타우트, 세종과 람빅 등등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맥주가 있는데!
그렇다. 이제 맛있는 무알코올 맥주 시대를 지나 다양한 맛이 있는 무알코올 맥주 시대로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는 분이 늘어나서 무알코올 맥주 시장의 저변 확대가 일어나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무알코올 맥주는 술을 못 마시거나 술에 약한 사람 이상으로 애주가에게 좋다. 오래오래 술 마시기라는 우리 애주가들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간을 아껴야 하지 않겠나? 이게 바로 내가 무알코올 맥주를 즐기게 된 이유다. 매일 마셔도 애기 간이라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서 마련한 나름의 자구책이랄까.
간테크라고 해도 되겠다. 재테크는 못 하지만 근(筋)테크와 함께 이렇게 간(肝)테크는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