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실 고증 미쳤다. 거울 치료 장인(匠人)이다.”
코미디언 이수지가 지난달 유튜브에서 선보인 ‘대치맘’ 패러디를 놓고 쏟아진 네티즌 반응이다. 이씨가 사교육 1번지인 서울 강남 대치동 학부모 사이에서 유행하는 패션과 말투, 일상을 코믹하게 재현한 10분 분량의 동영상 두 편은 1300만뷰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뿌렸다.
‘인간 복사기’란 말을 듣는 이씨의 흉내 내기 풍자는 새로운 기법은 아니다. ‘상대의 부정적인 모습을 거울에 비친 듯 그대로 따라 해 자기 성찰의 기회 혹은 수치심을 안겨주는 행위’란 뜻의 거울 치료는 우리 사회의 인터넷 밈(meme·유행 콘텐츠)으로 자리 잡았다. 거울 치료가 예리한 현실 풍자를 통한 소통의 수단인지, 혐오를 확산시키는 흉기는 아닌지 고민해 볼 시간이다.
까불면 참교육한다, 거울로
최근 수년 새 민간요법처럼 퍼진 거울 치료의 예는 이렇다.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이웃이나 민폐 주차를 한 얌체족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복수하고 “참교육시켰다”고 흐뭇해한다. 스마트폰에 얼굴 처박고 어른을 무시하는 사춘기 자녀, 툭하면 술 먹고 연락 끊기는 애인도 거울 치료 대상이다.
‘국뽕’에 빠져 일본을 비하했던 이들은 베트남인들이 한국을 깎아내리는 것을 보곤 “거울 치료 당했다”고 자성하기도 한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하고 물건 던진 갑질 손님에게 똑같이 반말하며 카드를 던졌다거나, 욕설과 모욕을 일삼는 상사나 교수에게 당한 그대로 갚아줬다는 경험담도 소셜미디어에 넘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원초적 정의관에 입각한 사적 복수는 많은 을(乙)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이는 각종 거울 치료 콘텐츠로 확산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나 ‘이혼 숙려 캠프’ 등 문제 가족을 소재로 한 TV 프로에선 출연자의 일상을 녹화해 보여주거나 패널이나 재연 배우를 동원해 잘못된 행동을 재현해 보인다. 자신의 모습을 처음 제3자의 시선으로 목격한 출연자들은 “내가 저 정도인 줄 몰랐다”며 고개를 떨군다.
이수지가 연기한 ‘제이미맘 이소담씨’도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 여느 거울 치료 콘텐츠와 다른 건 남에게 피해 준 적 없는, 그저 자녀 교육에 집중하는 상류층 부모를 소재로 삼았다는 점. 그 거울은 학벌과 계층, 부동산 등 모두가 영향 받지만 쉽게 건드리기는 힘든 이슈들을 언뜻언뜻 비춘다.
‘이소담’은 몽클레르 패딩에 샤넬 백을 걸치고 포르셰로 네 살 아들의 영어·수학 학원 라이딩을 해가며 배타적인 학부모 그룹에서 소개받은 ‘제기차기 선행’ 과외 강사 면접을 본다. “아이의 영재적 모먼트를 캐치하고 확장해 주는 게 엄마”라면서, 영어를 섞어 나긋나긋한 반존대 말투로 말하지만 왠지 재수 없는 캐릭터.
‘강남 엄마 교복’이라던 고가의 몽클레르 패딩이 개그 소품이 되자 중고 거래 플랫폼에 헐값에 쏟아졌다. “대치맘들이 긁혔다(약점을 들키거나 비하당해 불쾌하다)”는 말이 나왔다.
미러링은 원래 공감의 도구
거울 치료는 학술 용어가 아니다. 다만 신경외과와 통증의학과에서 실험적으로 쓰는 ‘거울 상자 요법’이란 게 있다. 사지 절단 장애인들은 없어진 부위에 통증이나 가려움을 느끼는 환상통을 겪곤 한다.
그럴 때 거울에 멀쩡한 손발을 비춰 움직이며 ‘반대쪽 진짜 손발도 움직인다’고 뇌를 속이면 증상이 개선되는 경우가 보고됐다. 뇌졸중이나 신경통 환자의 재활 치료에도 일부 효과가 있다.
실제 거울은 쓰지 않지만 사람이 다른 사람을 따라 하는 ‘미러링(mirroring)’도 있다. 불안·분노를 겪는 상담자와 마주 보며 같은 말과 행동을 함으로써 공감과 신뢰를 쌓는 심리 치료 전 단계 요법이다.
미국의 유명 정신과 의사 마크 고울스톤은 “그러니까 가족과 대화가 안 통하고 사회가 마음에 안 드는군요”란 식으로 환자의 말을 반복하거나 요약해 주기만 해도 적개심이 누그러지고, “상황이 말씀대로 이러하니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물으면 스스로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소개한다.
이는 미 연방수사국(FBI)의 각종 협상에도 적용된다고 한다. 호감을 느끼는 사람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게 되는 원리다.
요컨대 미러링은 본질적으로 호감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호감을 일으키기 위한 것이지, 상대의 행동을 악의적으로 흉내 내거나 그대로 앙갚음하는 기술은 아니다.
정신과나 심리 상담소에선 갈등 상황을 재현하거나 녹화 영상을 틀어주는 식의 미러링 요법은 효과를 장담할 수 없어 극히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독일 심리학자 레온 빈트샤이트는 “애초 자기 객관화 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에겐 미러링조차 무의미하다. 반성하라며 갑자기 거울을 들이대면 본인과 타인을 더 철저히 분리, 자신의 과오조차 상대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대치맘 거울 치료’에 대해선 호평이 많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수지는 사교육 열풍, 부(富)와 학력의 세습, 명품·허세 같은 한국의 단면을 가볍게 보여줬다. 여러 계층이 ‘나는 왜 부유층을 부러워하면서도 조롱하고 싶은지’ ‘대치맘인 나는 왜 긁혔는지’ 각자의 내면과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 훌륭한 패러디였다”고 했다.
그는 “거울 치료식 풍자는 약자에겐 카타르시스(catharsis·감정 방출을 통한 정화)를 주되, 너무 의도적으로 특정 집단을 공격하지 않도록 균형을 잘 잡아야 성공한 메시지가 된다”고 말했다.
무한 보복의 진흙탕 될 수도
그러나 거울 치료는 대개 복수 혈전으로 흐른다. 당장은 속 시원할지 모르지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상호 이해가 아닌 조롱과 혐오 주고받기로 가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게 10여 년 전 격화된 젠더 갈등이다. 여초 사이트에서 “가부장적 성차별을 깨려면 충격 요법으로서 거울 치료가 필요하다”며 남성 전체를 적대시하고, ‘김치녀’ ‘오또케’ 같은 여혐 용어에 상응하는 ‘한남충’ ‘웅앵웅’ 같은 남혐 용어를 퍼뜨렸다.
죄 없는 개인을 상대로 한 “넌 우리에게 피해를 준 집단에 속하므로 거울 치료 당해도 싸다”는 심리는 공론장을 무너뜨리고 반(反)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킨다.
백인이 주인공이었던 역사와 문화를 바로잡는다며 ‘흑인 인어공주’ ‘흑인 클레오파트라’ ‘라티나 백설공주’를 내세운 할리우드가 거센 반발과 수익 감소에 직면한 것도 “너희도 중심에서 밀려난 소수자의 기분을 느껴보라”는 공격적 거울 치료의 역효과라 할 수 있다.
정치권에도 “당한 만큼 갚아주겠다”는 죽기 살기식 복수심이 팽배하다.
지난 1월 진보 진영의 ‘입’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방송에 나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권을 동원해 이재명을 말살하려고 했다. 조기 대선이 실시되면 민주당의 누군가 대통령이 돼 그대로 해줬으면 좋겠다. 국민의힘, 즉 야당 후보의 모든 생활을 탈탈 털어 관용차와 법인 카드 사용 내역을 전수조사한 후 모두 기소해 일주일에 세 번 네 번씩 법정 출입하게 만들고 ‘저 사람은 사법 리스크가 있어’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에선 코미디언의 대치맘 패러디조차 거울 치료의 폭발력에 흥분한 이들에게 악용될 위험이 크다.
이미 일부 네티즌이 종일 자녀 학원 라이딩을 한다는 배우 한가인에게 몰려가 인신공격을 퍼부었다. 졸지에 계층·성별 혐오의 희생양이 된 한씨는 관련 동영상을 삭제했다.
이수지에겐 “강북 빌라맘도 패러디해 달라” “△△△로도 변신해 보라”는 요청이 밀려든다. 이씨는 “(대치맘의 파급력이)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며 자중하고 있다고.
풍자가 저격이 되기 전 멈출 때, 웃음은 휘발될 때 빛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