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으로 모든 물품 저렴하게 정리합니다.”

무동력 러닝머신, 사이클, 각종 머신, 파워리프팅 바벨, 고무 원판, 실내 LED 전광판에 심지어 수건까지. 전국 헬스장 관장들이 모인 한 동호회 카페에는 이 같은 ‘폐업 떨이’ 게시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올해만 벌써 10여 건. “역대급이네요. 내수가 너무 안 좋고 다들 대출금 갚느라 정신없을 테니 PT(개인 트레이닝) 받을 돈이 없겠죠. 경기 안 좋으면 꼭 필요하지 않은 지출을 먼저 줄이니까 우리 업종은 타격이 다이렉트네요.”

경기 침체와 민심 변화가 겹치며 썰렁한 헬스장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경기 침체와 민심 변화가 겹치며 썰렁한 헬스장이 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경기도 용인의 한 운동 장비 매입 업체, 거대한 창고에 시커먼 운동기구가 한가득 쌓여 있다. 매일 1~2건씩 폐업 관련 연락이 온다. 이곳 대표는 “이 업계에 15년 있었는데 올해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코로나 때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요새 장사 접는 곳은 대부분 덩치 작은 중소형 업체예요. 버틸 힘이 없는 거죠.”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헬스장 폐업률은 약 70%, 상당수가 창업 1년 이내에 문을 닫는다.

◇마스크 쓰고도 운동했는데…

폐업한 헬스장에서 들여온 운동기구로 가득한 경기도 용인의 한 매입 업체 창고. /이건송 영상미디어 기자

인플루언서들도 타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유명 헬스 유튜버 김계란(36), 문석기(33) 등에 이어 올해 초에는 보디빌더 겸 유튜버 이준규(36)씨도 파주에서 운영하던 100평짜리 헬스장 한 곳을 접었다. “지금도 (다른 지점에서) 3개월째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 지방 행정 인허가 데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폐업한 ‘체력단련장업’은 553곳, 전년 대비 26.8% 뛰었다. 통계가 작성된 199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 감염병 여파로 극도의 공포가 몰아닥쳤던 2020년(430곳), 2021년(402곳)보다 타격이 큰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진입 장벽이 낮다 보니 개업이 우후죽순이었고 과열 경쟁이 극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한 헬스장 관장은 “수입은 줄었는데 운동기구 등의 고정비용은 커졌다”며 “도로에 외제차가 늘어난 것처럼 대당 1000만원이 넘는 외제 고급 머신을 놔야 눈길을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헬스장 회원권 가격은 월 1만~2만원 수준으로 내려갔고, 심지어 서로 회원을 빼가기 위해 헬스장을 옮기면 기존 지불한 금액만큼 추가 혜택을 주는 ‘기간제 보상’ 같은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도 심해졌다. 대한 피트니스 경영자 협회가 ‘기간 보상제 헬스장 신고센터’를 운영할 정도다.

유행이 ‘러닝 크루’ 등으로 경로를 틀면서 헬스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줄었다. 여기에 웨이트트레이닝으로 체격을 불리는 ‘벌크업’,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보디 프로필’ 열풍이 식은 것도 한몫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직장인 박모(39)씨는 “예전에는 헬스장에 가야만 운동이 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대체재가 많다”며 “유튜브만 봐도 운동 정보가 넘치다 보니 홈 트레이닝 여건도 좋아졌다”고 말했다.

◇‘먹튀’에 ‘깜깜이’… 불만 높아져

그래픽=송윤혜

A씨는 지난해 7월 18일 헬스장 16개월 이용권을 끊고 66만원을 결제했다. 그러다 8월 12일 환불을 요구했다. 헬스장 측은 1일 이용료(2만원) 및 위약금, 오리엔테이션 비용(기구 이용법 설명, 인바디 측정, 식단 조언 등)의 비용을 제한 23만4000원만 환급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16개월 중 1개월만 다녔을 뿐인데 총 이용료의 약 65%를 날린 꼴이 된 것이다. 결국 A씨는 한국소비자원에 신고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이 같은 헬스장 관련 피해 구제 신청 건수가 2021년 2406건에서 지난해 3412건으로 치솟았다. 매년 증가세. 피해 10건 중 9건은 ‘계약 해지’ 관련이었다.

돈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상당수 헬스장이 ‘사전 판매’로 개업을 한다. 인테리어조차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파격 프로모션으로 장기 회원권을 끊게 해 목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종의 편법 대출인 셈인데, 추후 장사가 안 되면 환불을 못 해주거나 몰래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구조. 하루아침에 잠적하는 ‘먹튀’가 빈번한 이유이자, 업계 신뢰도가 크게 추락한 이유다. 한국소비자원 측은 “할인에 현혹되지 말고 실제 이용 가능한 기간(횟수)을 따져 계약해야 한다”며 “폐업 등 피해에 대비해 신용카드 할부 결제를 이용하라”고 당부했다.

◇건강한 운동 아니다?

인천의 한 헬스장 화장실에 붙은 안내문. 약물 사용이 얼마나 일반화 됐는지 보여준다. /온라인 커뮤니티

헬스(health)는 건강을 뜻하는 영단어이자 동시에 ‘헬스장에서 하는 운동’을 일컫는다. ‘건강=헬스장’이라는 도식은 그러나 깨지고 있다. 약물 때문이다. 단기간에 큰 근육을 얻어 이른바 ‘몸짱’이 되기 위해 스테로이드 등을 사용하는 일반인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인천의 한 헬스장은 “주사기는 휴지에 말아서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변기 뚫는 데 50만원 나왔습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기까지 했다. 의사 처방 없는 스테로이드 투약은 엄연히 불법이지만 이 세계에서는 공공연한 비밀. 지난해에는 헬스 트레이너가 직접 스테로이드를 200명에게 불법 유통하다 적발돼 검찰에 송치됐다.

최근 유명 보디빌더(남녀 불문)들의 약물 과다 사용으로 추정되는 잇단 요절 소식도 악재로 작용했다. 운동과 식단으로 완성한 ‘내추럴’이 아닌 스테로이드의 힘을 빌린 ‘로이더’가 많아지면서 업계를 향한 곱지 않은 인식도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알통 없이 그냥 오래 살련다” 같은 반응. 과유불급, 부상 위험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보험연구원은 지난해 12월 발표한 리포트에서 “보디빌딩(헬스) 체육 활동의 경우 부상 경험 비율이 73.7%로 생활 스포츠 전반의 부상률(64.3%)보다 높았다”며 “부상을 당한 생활 체육인들은 ‘안전 시설이 충분히 설치되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보완책 마련… 당근도 준다

그럼에도 운동은 필요하다. 나이 들어 시름시름 앓지 않으려면 근육은 필수이고, 춥고 더울 때 헬스장만 한 곳이 없기에. 이른바 ‘3대 운동’으로 알려진 데드리프트·벤치프레스·스쿼트 무게를 도합 530㎏ 들어 올린다는 헬스 마니아 김재섭 의원, 최근 ‘헬스장 먹튀’ 문제 해결을 위해 공정위를 찾았다. 김 의원은 “헬스장 먹튀는 대표적인 소비자 피해 사례”라며 “관련 제도를 면밀히 검토해 실효성 있는 정책을 도입하겠다”고 했다. 공정위는 휴·폐업 시 고객에게 사전 통지하도록 ‘체력단련장 이용 표준 약관’ 개정 및 선납 이용료의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가입 신청서에 기입하게 하는 등의 보완책을 보고하고, 현황 조사 결과를 토대로 불공정 실태를 시정키로 했다.

유인 정책도 나왔다. 오는 7월부터는 헬스장 이용료의 50%가 소득공제된다. 시설 이용료와 PT 등의 비용을 따로 구분하기 힘들 경우 전체 비용의 50%를 소득공제 대상으로 간주한다. 서울 금천구는 39세 이하 성인 구민 대상 프로그램 ‘피지컬100’ 참여자를 상·하반기 각 100명씩 선착순 모집한다. 한 달간 주 2회 구내 헬스장 등의 체육 시설을 이용하고 운동 사진을 인증하면 최대 10만원을 지급하는 사업이다. “2023년부터 시작해 매년 신청 첫날 모집이 마감됐다”며 “평균 성공률이 94%에 달한다”고 했다.